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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구미 불산유출 사고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언제까지 산업발전을 위해 노동자와 주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가

추석연휴를 앞두고 지난 9월 27일 구미 4단지 내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불산(불화수소산, HF) 유출사고가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났다. 지금까지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건강 이상증세로 검진받은 사람의 수도 1만 건을 넘어섰다. 사고현장 주변의 조경수와 가로수는 마르다 못해 타버렸고, 사고현장에서 인근 봉산리와 임천리 마을 내 수목들과 농작물들도 제초제를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말라버렸다. 일부 주민들은 임시 대피처로 떠났고, 텅 비어버린 인적 없는 마을 곳곳에는 이주대책을 촉구하는 플랜카드들이 걸려 있다.

[사진: 텅 빈 마을에는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플랜카드만 휘날린다.]

▲ [사진: 텅 빈 마을에는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플랜카드만 휘날린다.]


허술함의 극치를 보여준 정부

불산은 일반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물질이지만, 불산을 접해본 노동자나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다루기를 꺼려하는 무서운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자극성의 냄새와 무색의 물질인 불산은 유리와 금속을 녹이는 성질로 유리 가공이나 반도체에 주로 사용된다. 불산은 물에 잘 녹을 뿐만 아니라 끓는점도 낮아 공기 중에 쉽게 떠다니는 물질이며, 특히 인체에 흡입 독성이 강하고 뼈에서 칼슘을 빼내는 그야말로 뼈를 녹이는 강력한 독성물질이다. 불산은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급성 독성에 의한 만성영향을 준다.

이러한 맹독성의 불산유출 사고 피해수습에 대해 정부는 시종일관 허술한 대응을 해왔다. 사고 당일 불산에 오염된 현장을 중화제인 석회가 아닌 물로 수습했고, 이 과정에서 불산이 인근 마을과 공단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사고 직후 마을을 향해 오고 있는 하얀 연기를 목격한 마을이장의 기지로 마을주민들은 불산을 피할 수 있었다. 구미시는 사고 발생 후 몇 시간 뒤에 4단지 입주업체에 전원 대피령을 내렸고 주민들에게는 그보다 늦은 시각에야 대피 조치를 취했다.

사고 다음날 사고현장의 대기 중 불산 농도를 측정한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불산 농도가 1ppm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농도인 30ppm에 미치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구미시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유선결과통보를 가지고 주민대피를 해제했고, 50미터 반경 밖의 업체는 정상 가동시켰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1ppm은 결코 안전한 수치가 아니다. 산업환경기준에는 8시간 노출 기준으로 시간 가중치 평균이 0.5ppm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국립환경과학원이 말한 30ppm 기준의 근거는 IDLH(Immediately Dangerous to Life and Health Level)인데, 이 농도는 30분 이내에 도망쳐야 비가역적인 건강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준이다. 게다가 노동자와 주민들의 안전이 달려 있는 중요한 측정 자료를 정밀측정기기가 아닌 간이측정기로 측정했으며, 추후 대기 중 불산 잔류도 측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국내 최고라고 자처하는 정부의 환경전문연구기관마저도 불산유출 사고에는 속수무책이었으며,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나고서야 뒤늦게 마을에 측정장비를 설치하고 현장조사를 하면서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사진: 검진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 [사진: 검진을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피해자 여러분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합니다"라는 정부에서 건 플랜카드]


무서운 독성물질인 불산이 8톤이나 유출되었는데도 그것이 사람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주민들, 심지어는 사고현장 바로 옆 공장 노동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사고 당일 안개처럼 퍼지는 하얀 연기를 구경하기 위해 현장 가까이에 있던 노동자들도 있었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엉터리 안전기준치 발표 때문에 사고현장 주변의 공장 노동자들은 불산 노출 위험 속에서 작업을 계속해야 했고, 대피했던 마을주민들은 독가스에 노출된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고를 해결하기보다는 덮기에 급급한

사고 직후 구미시나 환경부와 노동부 등 관련 해당 부처 어디도 구미 불산유출 사고 현황을 알리지 않았다. 추석연휴가 지나고 불산유출 사고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뒤에야 구미시는 홈페이지에 사고현황을 올려놓기 시작했고, 경북도지사와 환경부 장관이 연이어 피해마을을 방문했다. 그러나 사고가 한참 지난 뒤에 방문한 정부관계자들 누구도 “농작물이 타들어 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살아도 괜찮으냐?”는 피해지역 주민의 질문에 답을 주지 못했다.

[사진: 애써 키워온 포도밭이 타들어가 바짝 말라버렸다.]

▲ [사진: 애써 키워온 포도밭이 타들어가 바짝 말라버렸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산업현장의 노동환경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노동부도 사고 피해수습과정에서 화학 유해물질 유출 사고 위기대응 행동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 위험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임에도, 그전까지 사고가 발생한 업체를 한 번도 관리∙감독한 적이 없었다. 대통령도 뒤늦게 교통사고 수준의 대응으로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뒷북을 쳤다. 환경부와 노동부, 구미시는 서로 책임 공방하기에 여념이 없고, 국립환경과학원은 대기와 수질 및 토양을 조사한 결과 불산이 미검출되거나 기준치 이내라는 발표를 하면서 피해주민들을 재차 우롱하고 있다.

최근 시민환경연구소가 진행한 조사 결과, 강우 시 피해지역 인근의 하천수의 불소농도는 강우 이전 환경부가 발표한 것보다 10배나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강우를 통해 불소 이온이 피해지역 하천에서 인근의 낙동강으로 유입되면서 불산의 추가적 오염이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먹는 물 안전기준치 이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확인과정도 없이 문제를 축소시키고 있다.

구미 불산유출 사고는 관재, 이같은 일이 다시는 없도록

이번 사고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총체적인 위기대응 실패로 그야말로 소통 부재로 인한 관재이며, 유해물질관리체계의 총체적인 부실을 보여 준 사례다. 더 이상 산업발전을 이유로 공장 노동자와 인근 지역 주민의 생명이 담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고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그동안 각 부처에 산재되어 있던 유해물질안전체계가 재정비되어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고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산업단지에서 사용하는 유해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장 노동자와 인근 지역 주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공단인접지역뿐만 아니라 공단 내 위치해있는 거주지역의 안전문제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사전예방차원에서 유해물질로부터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위험물질을 다루는 공장 인근의 안전이격거리 지정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덧붙임

고도현 님은 (사)시민환경연구소 선임연구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