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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공룡트림] 쫓겨나지 않는 세상

먼저, 동시 한 편을 먼저 소개한다.

달팽이집

김환영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왔으니,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이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사고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뼛속까지 얼어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불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 김환영, 동시집 『깜장꽃』 (창비)

검게 그을린 용산참사 현장에 걸려 있던 시다. 그 안에 묵묵히 서서 이 시를 보며 나는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집이 없었다. 초등학교만 세 번을 옮길 정도로 이사가 잦았다. 누군가의 집을 빌려 산다는 것은 참 불편한 일이었다. 매달 월세 시기가 다가오면 부모님은 다급해졌다. 팔고 남은 과일 바구니를 들고 가서 주인집에 넙죽 인사했고, 나는 괜히 불편했다. 주인집에 살던 동갑내기 친구는 세 들어 사는 아이라며 나를 놀려 대곤 했다. 그때의 기억이 가슴 밑에서 올라왔다.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이 뒤섞여 한동안 가슴이 묵직했다.
어린 시절, 집이 없는 것이 죄인 줄로 알았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동화책을 읽으면 나는 그때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 어깨가 펴진다. 그렇게 처음 만난 책은 김중미의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별천지)이다.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이 책은 2002년에 출간된 것인데, 철거 위기에 놓인 인천 만석동 판잣집에 사는 어린이에 대한 소설이다. 일기 형식을 빌어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상윤이, 상민이, 상희가 살고 있는 집은 바로 앞에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와 비교하면 낡고 초라한 곳이다. 하지만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 때론 슬프고, 괴로운 순간을 참아야 하지만 즐겁고 기쁜 날도 있다. 찌는 듯 더운 여름날 작은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붙어있는 것이 ‘정말 지옥’이지만, 집 밖으로 퉁겨져 나오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집 앞 골목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캠핑 온 거라고 상상’하며 하룻밤을 쾌활하게 보낼 수도 있다. 지옥 같은 밤이 순식간에 신나는 밤이 되기도 한다. 낡은 집이 아니라,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숨과 삶이 마음에 가득 찬다.
도시는 반짝 빛나는 새로운 것들로 채워져 있다. 낡고 오래된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 넣는 것이 당연하고 긍정적인 일이 된다. ‘사람’보다도 ‘깔끔한 디자인’이 앞서 있는 곳이 바로 도시다. 그런 도시 위에서 “우리 동네가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이대로 있는 것, 우리 집이 계속 여기에 있는 것, 그것이 내 바람이고 우리 동네 사람들의 소망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협적인 일로 여긴다.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정지혜 그림, 김장성 글, 사계절)는 어느 오래된 마을의 일상을 담은 풍경화 같은 그림책이다. 이 마을 골목에 들어서면 “쌀집 아저씨 자전거 소리, 실비식당 설거지 소리, 새마을 이발소 문 여닫는 소리, 사내애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소리, 고무줄 노는 여자애들 슬리퍼 소리, 삭은 빗물받이 한 귀퉁이 문득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책은 이곳에 살고 있지 않은 화자가 자신의 시점으로 어느 마을에 방문하여 눈에 비친 풍경을 그렸다. 이 책은 “골목에서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저물녘에 사라져간다.”라고 하는 글귀와 함께 끝난다. 저물녘이 되기 때문에 소리가 사라지는 것이기만 할까. 마을 건너편 쪽으로 아파트 신축 현장이 보태진 마지막 장면은 이중적 해석을 남긴다. 그 자체로 정치적 맥락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을의 소리가 사라져 가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도시화와 재개발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소리는 마을에 있는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서 발화하는 소리가 아니라 들려지는 소리라는 점이다. 작가가 마을로 들어가서 관찰한 것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마을의 표면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의 정치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보여주는 골목은 이미 사라진 것, 혹은 이제 사라질 것이라는 암시를 더 깊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사라진 것들, 혹은 사라질 것들을 추억하게 한다. 그 안에서 살아지고, 살아가고, 살아내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는다면 좀 곤란한 일이 아닐까. 개발이 중심인 시대이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귀결로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파란집』


『파란집』(이승현, 보리)은 마을이 사라지는 폭력적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글이 없이 그림으로만 표현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마을에 ‘재개발 사업’이 폭풍처럼 몰아치면서 어떻게 허물어져 가는가를 그리고 있다. 한 집에 남아 있는 다섯 사람이 격렬히 저항하지만, 결국 화염에 휩싸여 죽고 만다. 검은 연기가 걷히고 남은 자리는 고층 건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 피어 있는 다섯 송이의 민들레꽃.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용산참사 현장을 그대로 옮겨 담은 것이다. 아파트가 들어선 땅 위에 피어 있는 다섯 송이 민들레꽃은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섯 송이는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이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용산참사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고 나서 계속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한 어떤 장면이다. 바로, 파란 망루 속이다. 불길이 세어져 나올 정도라면 저 안은 어떻단 말인가. 그 안에서 어떤 울음을 내뱉고 있단 말인가. 겉은 조용하기만 한데, 그 안에 사람이 있고 나는 볼 수 없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그 모습을 기록하고 끄집어 내어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는 것은 소중한 작업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결말에 가서 재개발 사업은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꽃 다섯 송이에 희망을 걸고자 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결말이 아닌가하고 가슴을 치게 된다. 이야기 안에서 폭력을 멈추는 상상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낭만일까.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저, 아스팔트에 단단히 피어 있는 다섯 송이의 민들레꽃을 우리 모두가 잊지 않고 단단히 붙들어 나가며, ‘용산 그 이후’를 새롭게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덧붙임

이선주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