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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유혹] 핵에너지체제에 저항하는 생명들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 조정환 외, 갈무리, 2012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이 폭발한 지 1년이 지났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체르노빌-후쿠시마, 원자력의 사용이 불러온 재앙들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3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원자력에 의한 재앙의 역사를 통해 원자력의 위험성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원자력의 사용이 나의 삶과 맺는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기 바라며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책을 읽었다.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이 책은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만들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에서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대한 문제의식, 후쿠시마 원전폭발과 관련된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실천적 모색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글들은 원자력과 관련된 나의 문제의식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원자력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국가들이 원자력 무기나 원전을 보유하려고 힘쓰고 있나? 국가들의 이러한 노력은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원자력의 재앙에 희생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을 풀어 가는데 필요한 시사점을 얻었다.

사용 가능성이 수십 년으로 한정되어 있는 석유 등의 화석연료에 비해 수만 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원자력의 에너지원으로서의 잠재력에 대한 선전,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원자력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동원해서 많은 국가들이 원전확보에 힘쓰고 있다. 원자력으로 인해 민중들과 생명체들에 강요되는 참혹한 희생은 뒷전으로 밀어둔다. 이런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책에 실린 글에서 조정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핵은, 군사적인가 산업적인가를 불문하고, 절대적 폭력의 집중된 축적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적 특이성을 무력화시키고 자본주의적 발전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에너지체제이다. 그리고 오늘날 인지자본주의는 이 폭력의 체제를, 사람들의 삶의 가능성이 전개되는 장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그것을 제한하는 틀로 부과하고 있다.”

생명들에게 재앙을 불러오는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근거를 자본주의의 발전체제와 관련해서 찾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무기나 원자력 에너지가 절대적 폭력의 집중이라는 것은 2차 대전에서 벌어진 원자력 무기의 사용과 크고 작은 원전 사고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국가는 이런 재앙을 사람들의 인지적 활동과 연결시킨다. 이 책의 다른 필자인 코소 이와사부로의 말을 통해 재앙을 민중들의 인지적 활동과 연결시키려는 국가의 노력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가장 단호한 내셔널리즘은, 후쿠시마에서 가져온 식품을 용감하게 소비하자는 캠페인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식품점이나 레스토랑은 자신들이 그곳의 생산물을 사용하고 있음을 광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사람들을 지지하는 의미로 그것을 즐기라고 고객들에게 고무하면서 말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을 먹으라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민중들의 무기력한 심리적 상태를 이용해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심리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이 아닌가?

원자력의 재앙에 희생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은 수만 년을 두고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원전 폭발은 물질적 재앙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재앙까지 불러와서 행동할 능력을 축소시키고 무기력과 동요를 강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민들이 모인 텐트 안에서 연극을 하는 사쿠라이는 “축하합니다”라며 공연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유인즉, ‘재해지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존과 근대 자본주의가 대결하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싸울 대상을 만났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사쿠라이는 말한다. “일본으로 와라. 일본은 소비사회이고 관리사회이고 대중문화사회로서 현대에서 전형적인 장소였다. 그게 부서지고 있다. 모두들 동요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세계사가 새롭게 쓰여질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코소 이와사부로의 말을 통해 일본 민중들의 대응 양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다. “보통 가정에서는 아버지들은 모든 것이 괜찮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들의 아내를 피해망상증 환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의 분노한 어머니들은 도쿄로 가서 교육, 문화, 체육, 과학 기술부를 포위하고 농성을 했다. 그들은 장관에게 20밀리시버트 표준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민중들은 일상생활의 문제와 삶의 재생산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그들 자신의 투쟁을 시작했다.”

원자력의 재앙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무기력에 빠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기력을 강요하는 권력에 맞선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원전 사고의 잠재적 피해자이자 은폐된 원전 사고의 피해자이기도 하며 원자력에너지체제에 의한 일상적인 통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응은 어떠한가?

한국에서는 영덕과 울진, 삼척 등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세 개 지역의 반핵 단체들이 정부의 신규 원전부지 선정 폐기를 촉구하는 운동을 개시했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이 출범했으며 반핵의사회가 구성되었다. 나아가 한․중․일 등 동아시아에서는 <동아시아 탈원전 자연에너지 네트워크>도 발족했다.

이들 역시 원자력의 위험 속에 살아가며 그 위험에 대항해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원자력에너지체제에서 민중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며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을 읽고 원자력과 관련된 문제들을 되짚어보고 나 역시 원자력에너지체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민중의 일원임과 연대의 감정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덧붙임

김영철 님은 다중지성의 정원의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