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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의 인권이야기] 그냥 ‘보지’가 아니잖아

누구에게 어떤 표현의 자유인가

저는 한 1년 전부터 ‘마포FM’이라는 공동체라디오에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L 양장점’이라는, 여성 이반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레즈비언 미술가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진행하고 있어요. 성소수자들의 삶과 경험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을 이야기하는 건, 성소수자로서 사회적 발언이 빈약한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방송을 했지요.

그러다가 몇 개월 전 아주 화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진행하는 코너의 방송 내용 때문에 ‘L 양장점’이 방송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구체적인 상황은 이래요.

그 날 방송에서는 미국의 ‘티 코린(Tee Corinne)’이라는 레즈비언 미술가를 소개하였습니다. 티 코린에 대해 소개하는 게 필요하겠네요. 티 코린은, 레즈비언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여성들 간의 사랑을 과감하게 표현한 여성미술가였어요.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하고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특히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인 부분인 질과 성기에 직면하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죠.

'보지색칠공부' 책 표지.

▲ '보지색칠공부' 책 표지.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서 소외되어 있습니다. 여성이 자신의 몸의 욕망,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금기시되기 때문이죠. 만약 그렇게 한다면 소위 그들의 언어로 ‘창녀’로 낙인을 찍습니다. 적어도 그녀의 몸은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티 코린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몸 교육용 ‘The Cunt Coloring Book’이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저는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최대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 ‘보지 색칠공부’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위원회는 ‘보지’라는 말에 경고를 보냈어요. 방송위원회가 말한 경고 사유는 ‘보지’라는 말이 방송에 부적합한 언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송국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방송위원회로부터 공식적인 공문을 통해 경고를 받게 된 마포FM 측은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마포FM 공동체 라디오 내 사전심의를 ‘L 양장점’ 에게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저는 이 당시에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또 저 때문에 심의에 걸린 ‘L 양장점’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도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화가 났지요. 보지가 뭐가 어때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이야기하는 맥락에서, ‘보지’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떤 비속함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가. 여성의 몸에 대한 비하를 의도한 것으로 들리는 어떤 구석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말입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사건은 재미있는 일면이 있습니다. 그 날 소개한 레즈비언 작가 티 코린의 ‘보지 색칠 공부’-여기서는 이 말을 마음대로 써도 되겠지요? 저는 이 일 이후부터 ‘보지’가 들어간 말을 쓰게 될 때면 망설이게 되었답니다.-는 미국 보수주의적인 의원 모임으로부터 ‘쓰레기’라는 호칭을 얻었는데요, 그들은 이 작품을 ‘포르노’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레즈비언의 사랑과 섹스를 재현한 티 코린의 작품들은 모두 ‘포르노’로 분류되었습니다. 예술이고 나발이고 하는 고상한 명분조차 소용이 없습니다. 레즈비언 작가가 표현하는 레즈비언의 사랑과 레즈비언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의도로써의 섹스는 그냥 쓰레기일 뿐인 것이죠.

레즈비언 얀트라(Yantras of Womanlove) #30. 티 코린의 1982년 작.

▲ 레즈비언 얀트라(Yantras of Womanlove) #30. 티 코린의 1982년 작.

동성애, 보지, 섹스라는 단어들과 관련 표현들은 그것들이 어떤 맥락에 놓여있든 누가 말하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고 누구를 향해 말을 걸고 있는가 등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소통의 주요한 조건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언제나 심의, 검열 하는 구조라면, 여성 성소수자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할 통로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맥락도 소통의 의도도 고려되지 않는 일방적 검열은 소위 ‘정상’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섹슈얼리티의 존재들이 자신들의 삶과 경험을 가시화하고 재현할 어떤 통로조차 허용하지 않게 됩니다. ‘동성애’를 죄악시하고 성소수자를 ‘죄인’으로 이야기하는 재현물이 넘쳐나고, 이성애 중심의 포르노 안에서 재현되는, 레즈비언의 삶과 관련도 없는 ‘여성끼리의 섹스’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 제기도 없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제 표현의 자유는 갈 길을 잃은 듯이 보입니다. 도대체 누구에게만 허용된 표현의 자유입니까? 아니 우리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요, 누구에게 어떤 표현의 자유가 필요할까, 공평하고 안전한 소통의 권리를 위해 발언의 자유, 그 조건이 마련되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

소통의 권리, 소수자들의 삶의 재현, 공감대의 확대와 함께 사유하는, 그리고 주체와 목적을 가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질문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임

수수 님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