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일반

무지개 빛 연대를 꿈꾸는 퀴어버스가 달린다

희망의 버스, 기억해야 할 것들 ②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 1차 희망의 버스는 마음과 마음이 움직여 모인, 놀랍고도 감동적인 연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많은 퀴어들을 만났다. 이 사실이야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누군가 제안하거나 일부러 조직한 것도 아닌데 꽤 많은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찾아와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기쁘고 반가웠다. 85호 크레인 위에 붙였던 다양한 색깔의 바람개비처럼, 그 날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아래는 수많은 색이 뒤섞여 어울리는 아름다운 해방구였다. 이렇게 시작된 ‘퀴어버스’의 경험을 되짚어 보며 무지개버스와 희망의 버스의 만남이 선물한 ‘해방’의 의미를 헤아려보려고 한다.

퀴어버스를 타고 가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서울에 돌아온 후 1차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자발적인 제안으로 2차 희망의 버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아예 ‘퀴어버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가능했던 건 1차 희망의 버스에서뿐만 아니라, 이후 트위터를 통해서도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투쟁, 희망의 버스에 대한 성소수자들의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성소수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있었고, 2차 희망의 버스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혼자 또는 몇몇이 가기엔 낯설고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 모여서 간다면 더 당당하고 신나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무엇보다, 우리 성소수자들이 이 투쟁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기대 속에 함께 준비할 이들이 모이고 ‘퀴어버스’는 다시 20대들의 ‘영의정 버스’, 장애인, 청소년,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무지개 버스’ 참가단이 되어 ‘희망의 버스’에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퀴어버스’라는 이름을 달고 간다는 건 성소수자 참가자들의 대대적인 커밍아웃이기도 했기에 한편으로는 꽤 걱정되고 부담스러운 점들도 있었다. 가기 바로 전까지도 마음 한편에서는 혹시라도 누군가가 집회 현장에서의 차별적인 발언이나 혐오를 드러내는 행동으로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떠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그런 걱정들은 완전히 기우였다.

당초 버스 한 대를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참가자 수는 버스 한 대를 훌쩍 넘겼고 퀴어버스는 역시 ‘퀴어답게’ 신나고 발랄했다. 부산역에서 내려 행진을 하면서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는 멋진 화음으로 다른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고, 빗방울에 온몸이 젖으면서도 퀴어버스 참가단은 신나게 노래를 하고 악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밤새 비와 최루액에 젖은 몸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꾸덕꾸덕 말리면서도 결국 크레인 앞에 가지 못해 아쉬워하던 우리는 마지막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전하며 ‘성적소수자’를 언급하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한 마디에 모두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간 수많은 집회 현장에 무지개 깃발이 함께해 왔지만 공식적으로 누군가가 성소수자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기에 김진숙 지도위원의 그 한 마디는 모두에게 평생 잊지 못할 큰 감동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2011년 12월 한진중공업의 조합원들이 서울시의회 점거농성을 하고 있던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의 촛불문화제에서 연대발언을 하기까지 수많은 어색한 만남과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이어졌다.

어색한 부딪힘과 묘한 긴장들

사실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차 희망의 버스 때 퀴어버스 참가단 명의로 무지개 그림이 그려진 현수막 두 개를 가지고 갔더랬다. 현수막에는 “성소수자들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합니다”라는 내용과 “85호 크레인에 희망의 무지개가 떠오르는 그 날까지 연대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우리는 밤새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로부터 현수막에 연대 메세지를 받아서 한진중공업 앞에 걸어두고 올 생각으로, 힘들지만 열심히 두 개의 현수막을 챙겨갔다.

하지만 밤새 비와 최루액에 잔뜩 젖은 데다가 결국 한진중공업 앞에 갈 수도 없게 되어서 한진 조합원 한 분께 현수막을 드리고 왔다. “퀴어버스로 참가한 성소수자들이 만든 지지 현수막이니 공장 앞에 꼭 걸어주세요” 하는 말과 함께. 하지만 며칠 후, 개인적으로 한진중공업 앞에 갔을 때 보니 현수막이 보이지 않았다. 그 때는 한참 맞은편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도 심하고, 사측의 탄압도 심할 때라 차마 걸지 못하셨나보다 싶기도 했지만 이후 다른 조합원 한 분께 여쭤보았더니 현수막의 존재조차 잘 모르시는 걸 보고는 내심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가하면 “호모새끼야”라는 욕은 희망의 버스와 한진중공업 앞 투쟁에서 수시로 들었던 말이었다. ‘조남호’로 삼행시를 지으면 마지막은 ‘호모새끼야’로 끝났다. 그나마 희망의 버스와 몇 차례의 방문 이후 조금 안면을 트고 나서는 삼행시를 지은 조합원 분께 ‘호모새끼’라는 욕은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말이니 다른 말로 바꿔달라고 요청을 드릴 수 있었지만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불편함과 긴장감은 숨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의 장기 파업이나 투쟁 현장에서는 볼 수 없는 ‘가족대책위’의 모습도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아빠들’로 명명되는 남성 노동자들, 무엇보다도 ‘처자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부장이기에’ 복직되어야 한다는 호소는, 정리해고 투쟁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가부장 중심의 가족주의에 기댄 호소를 해야 하는 현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해주어 늘 슬프고 불편했다.

물론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노동자들이 성소수자들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그것도 자주 만나게 되는 일도 편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색함과 불편함 속에서도 참가자들이 뒤섞여 1박 2일을 함께하고 그렇게 만난 인연이 트위터나 개인적인 방문 등으로 계속 이어지는 ‘희망의 버스’의 특성상 많은 만남과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들은 커다란 무지개 퀼트를 만들어 전달하고, 개인적으로 찾아가고, 트위터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대책위와 부쩍 친해졌다. 이제, 그 동안에는 집회 현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보아도 굳이 관심을 두지 않거나 ‘저런 사람들도 왔네’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던 노동자들이 무지개 깃발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 의미를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그저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위터 때문에 희망의 버스에 함께 했던 성소수자들도 더 많은 노동 문제와 사회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그 감동적인 변화를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원안 통과를 위한 성소수자들의 농성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움직이는 연대로

서울시의회 농성장에는 한진, 쌍용자동차, 재능, 기륭 등 희망의 버스에서 만난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방문이 이어졌다. 김진숙 지도위원도 전화연결을 통해 지지발언을 해 주었다. 성소수자들의 점거농성이라는 강력한 직접행동도 유례없는 일이었지만 성소수자들의 투쟁 현장에 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지지방문을 오고, 연대발언을 한 것 또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사실 재능, 기륭의 여성 노동자들보다 남성 노동자들은 더 어색하고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그 동안에는 사실 잘 몰랐고 거부감도 있었다”는 그들의 솔직한 발언과 긴장 섞인 웃음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큰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서로 거의 반 년을 만나고 부딪힌 경험 속에서 이루어진 변화였다. 이후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의 ‘와락크리스마스 희망텐트촌 문화제’ 때는 ‘지보이스’가 공식 초청되어 공연을 하기도 했다.

‘희망의 버스’와 ‘무지개 버스’는 그 동안 집회 참가자 또는 연대단체의 일부로만 인식되었던 이들이 가까이에서 서로를 만나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과, 청소년들에게 위험하니 뒤로 빠져있으라는 이들과, 성소수자 처음 본다고 속삭이는 사람들 속에 함께했지만 장애인들은 전동휠체어의 고장을 무릅쓰고 빗속을 뚫고 달려와 차벽 바로 앞을 떠나지 않았으며 청소년들은 최루액 앞에서 가장 열심히 싸웠다. 영의정 버스에 함께한 20대들은 신나는 플래시몹을 펼쳤고, ‘지보이스’뿐 아니라 장애인 노래패 ‘시선’의 멋진 공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비록 희망의 버스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거세어지는 탄압과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무지개 버스’ 참가단이 보다 적극적으로 희망의 버스 전체 참가자들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함께하지 못했던 점은 매우 아쉽지만 우리의 부딪힘은 앞으로 오랫동안 서로에게 남아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 믿는다.

이제 쌍차, 재능 등 더 많은 투쟁의 현장에서, 그리고 여러 주체들의 다양한 투쟁의 현장에서 서로의 만남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니, 투쟁의 현장뿐만 아니라 퀴어 문화축제, 각종 토론회, 문화제, 후원의 밤이나 후원주점 등 온갖 함께할 수 있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만나고 즐겁게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직 대 조직으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서로의 아픔과 현실에 공감할 수 있는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그렇게 노동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20대들이 싸우는 현장에서도 그저 연대단체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친구 같은 마음으로 지지하고 함께하러 온 사람으로, 더 많은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희망은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
덧붙임

나영 님은 퀴어버스 참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