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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의 인권이야기] 강의 재개발

댐 위와 아래의 사람들

개발을 하면 땅값이 올라 부자가 된다. 그래서 모두들 개발에 매달린다. 저개발된 지역일수록 개발에 대한 환상과 환호는 더욱 크기 마련이다. 4대강 토건공사를 생각하는 남한강 여주지역의 여론을 대표하는 표어는 ‘1,500년만의 개발 기회’이다. 그렇지만 개발은 동시에 누군가의 삶을 박탈한다. 뉴타운, 용산, 두리반, 명동에서의 싸움은 재/개발의 문제가 무엇인지 똑똑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강에서도 재개발이 한창이다. 강의 재개발은 무엇이 문제일까.

[그림: 윤필]

▲ [그림: 윤필]


수몰민, 철거민의 또 다른 이름

한명회의 별장이 있던 압구정동은 강물이 불어날 때마다 물이 넘치던 홍수터였고 지금은 강남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 중 하나이다. 현대건설은 한강의 섬이었던 저자도를 파내, 압구정동 4만 8천여 평을 매립했다. 저자도의 모래가 사라진 만큼 압구정동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다. 저자도가 사라지는 동안 밤섬도 수난을 겪었다. 여의도를 매립할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 섬이 폭파된 것이다. 밤섬에 살던 620명의 주민들은 마포구 와우산 기슭으로 이주해야 했다. 여의도엔 증권가와 국회의사당이 들어섰다.

개발된 땅으로 다시 강물이 넘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강을 다스리기 위해 상류에는 댐이 세워진다. 북한강을 막고 있는 소양강댐과 남한강을 막고 있는 충주댐이 이때 세워졌다. 하류의 침수를 막기 위해 상류의 사람들이 수몰된다. 소양강댐과 함께 18,546명, 충주댐과 함께 18,693명이 수몰민이 되었다. 강에서는 공터를 개발할 때도 철거민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수몰은 너무 점잖은 말이다. 집과 마을이 수장될 때, 그 곳에 살던 사람도 함께 수장된다. 사람은 언제나 그가 살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압구정동과 여의도에서 상승한 땅값을 다 더하면 이들의 삶을 보상할 수 있을까?

댐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떠나는 사람만 서러운 것은 아니다. 댐으로 물이 막히면 호수가 생기고 삶의 모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호수는 안개를 발생시키고, 안개는 태양을 가려 농사를 방해한다. 습도가 높아지는 것도 온도가 낮아지는 것도 농사에 좋지 않다. 호수의 수위에 따라 지하수의 수위도 요동을 치는데, 정작 물이 가장 많은 곳에서 물이 넉넉하지 못한 이유이다. 넓은 호수는 교통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소양강댐 이전에는 양구에서 춘천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었는데, 댐과 호수가 생긴 이후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가 되었다. 지금은 도로사정이 나아졌다고 1시간이 걸린다.

댐이 있는 곳에 규제가 따라간다. 수도권 식수 공급을 위한 규제만 서너 가지에 이른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팔당댐 상류에서는, 집이 무너져 내려도 마음대로 고쳐지을 수가 없다. 수개월에 걸쳐 집 마당에 창고라도 만들어 놓으면, 어느새 공무원이 나와 당장 철거하라고 명령을 내리곤 한다. 사정이 이러니 남는 사람도 오래 살기는 힘들다. 한 때 5만 명이던 인구가 2만 명으로 줄어든 양구는 임야가 평당 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압구정동 땅 1평을 팔면, 양구 땅 10만 평을 살 수 있는 셈이다.

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올 여름 이틀간 계속된 비로 우면산에 산사태가 나는 사이, 팔당댐 바로 위에 있는 곤지암천과 경안천에서도 강물이 넘쳐 마을이 물에 잠기고 여섯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많은 비로 서울의 강변공원과 도로가 침수되었고,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한강의 수위와 팔당댐의 방류량을 기사로 내보냈다. 팔당댐의 방류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서울이 범람할 수도 있고 팔당댐 상류가 범람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방류량 결정의 방정식에서 상류의 수위나 범람위험이 변수인 것 같지는 않다. 주민들은 넘쳐온 강물을 피해 대피하면서 생생하게 증언한다. “서울 주민들 살리려고 수문을 너무 늦게 열어 사고가 났다.” 강을 흐르게 하거나 막을 수 있는 댐은 사람을 죽이고 살릴 권리 또한 가지고 있는 셈이다.

4대강 토건공사도 지금…

4대강 토건공사도 댐을 만든다. 영주댐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강인 내성천을 막는다. 물길을 돌려 내성천의 맑은 물을 낙동강에 공급한다. 영주댐 상류는 500여 세대가 수몰되고, 내성천 하류는 물과 모래의 공급이 끊겨 강이 사라진다. 영천댐에 막혀 말라버린 금호강은 영주댐으로 막히게 될 내성천의 내일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죽은 강을 살리는 4대강 퍼포먼스는 금호강에도 해결책을 내놓았다. 보현댐을 새로 건설해 금호강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댐으로 막혀 마른 강이 또 다른 댐으로 흐른다.

4대강 토건공사로 건설되는 보들은 국제 대형댐 기준에 따르면 댐으로 분류된다. 낙동강 가장 아래쪽에 건설되는 함안보에는 주민대책위가 있다. 보로 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지대가 낮은 주변지역도 물에 잠긴다. 물에 잠기지 않아도 땅 밑까지 올라온 지하수 때문에 물이 빠지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문제가 없다던 정부는 함안보의 관리수위를 7.5m에서 5m로 낮추었다. 그래도 농사피해 면적이 372만평 정도로 추정된다. 주민들의 설명요구에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7억 원을 들여 연구용역이 진행되었는데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는다. 주민들은 또 묻는다. 낙동강 상류의 대도시에 큰물이 나면 보의 수문을 열어 홍수를 이쪽으로 내려보낼 것이냐고.

개발의 도미노에서 벗어나려면

강을 재개발하는 방식, 재개발로 돈을 버는 방법은 4대강 토건공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4대강 공사에 맞서 사람들은 아직도 싸우는 중이다. 때로는 피해대책을, 때로는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지만, 그것으로 다 표현되지 못하는 울분이 있다. 이것은 강과 더불어 살던 삶을, 누구 맘대로 처분하고, 누구를 위해 희생시키는가의 문제이다. 또 우리 시대가 강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한편으로, ‘1,500년만의 개발 기회’라는 여주의 표어는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이것을 단순히 ‘돈만 아는 사람들’의 말이라고 치부해야 할까. 자신들의 희생을 디딤돌로 누군가는 큰돈을 벌어왔는데, 이제 우리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을까. 댐 위의 사람들과 아래의 사람들의 관계 맺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새로운 그림이 제시되지 않는 한, 개발의 도미노에서 앞줄에 위치하려는 자리쟁탈전은 끝내기 어려울 것이다.
덧붙임

승욱 님은 두물머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