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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1] ‘반값 아파트’가 아니라 ‘사회주택’을

1980년대 이후 국내 부동산 정책 평가

‘10.29’, ‘8.31’, ‘3.30’, ‘11.15’, ‘1.11’ 이번 정부 들어 부동산과 관련한 굵직한(?) 대책이 줄을 잇고 있다. 따져보면 대개 그간의 부동산 정책 논쟁의 핵심은 ‘집값’ 문제였으며, 그 해법은 투기적 가수요 억제와 공급확대로 단순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집값의 향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집값은 수도권 및 개발 예정지역을 중심으로 널뛰기를 계속했다. 급기야 부동산 거품붕괴가 임박했다는 이야기들이 간간히 들려왔으나, 날개 달은 집은 연착륙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아직도 비행중이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정책의 실패’로 문제 삼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기꾼들의 반란’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1980년대 말을 겪어 본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집값’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또 주거정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던 것 역시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뛰는 집값 문제와 그에 대한 다양한 모색들은 계속되어 왔다.

시장 중심적 토지 및 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출처; 인터넷 참여연대 홈페이지>

▲ 시장 중심적 토지 및 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출처; 인터넷 참여연대 홈페이지>



주거 정책의 변화와 집값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우리에게 ‘민주화의 이행기’로 기억되는 1980년대 말은 군부독재의 마지막 저항이 거세기도 했지만, 주택문제의 측면에서도 그 심각성이 더해가던 시기였다. 특히 이 당시 토지 및 주택가격과 전세값이 폭등하였다. 민주화라는 큰 흐름과 함께 주거부문의 위기는 정부로 하여금 지금의 분당, 일산, 부천 중동, 산본 등의 신도시 건설로 대표되는 주택 200만 호 건설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또한 ‘토지공개념’이라 불리는 토지 관련 3법이 입법되기도 하였다. 이때 최초의 사회주택이라 할 만한 영구임대주택이 도입돼 건설되기도 하였다.

이후 평균적인 집값 상승률은 1997년 이전까지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게 되었다.(하지만 이 시기에도 전세값의 하락은 없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와 함께 주택의 공급과 수요 측면에 있어왔던 규제들-예를 들면 소형아파트 의무공급제도 폐지, 재개발 및 재건축사업의 규모별 의무공급비율 폐지, 분양가 자율화, 주택 전매제한 폐지, 신축주택 구입 양도세 면제 등-이 대대적으로 해제되었고, 주택가격 및 전·월세가격은 다시 폭등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대체로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가 소유의 미로에서 집값 잡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집값’은 곧 주거문제로 통한다. 우리들이 생활하는 공간의 생태 환경적인 측면, 안정성이나 기능, 그리고 계속적인 점유, 자아의 표현, 그리고 이웃 사람들 간의 관계들 따위는 ‘집값’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생활공간으로서 집이 가지는 이러한 정체성들은 지불 가능한 (사람의) 경우에만 부분적으로 충족될 수 있을 뿐이다. 2002년을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주택보급율은 100%를 넘어섰다. 그러나 자기 집을 소유한 가구는 55.6%(2005년 통계)에 불과하다. 물론 지어진 주택은 ‘서민의 자가소유’를 위해 매매되지 않았다.

그간의 주거정책이 그랬고 지금의 주거정책 논쟁 또한 다르지 않지만, “많이 짓고, 투기는 막으면서 서민이 살(buy)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반복한다. 이것이 지금 대부분의 ‘집값’ 논쟁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집을 소유한 가구 55.6%, 소유하지 못한 가구 44.4%다.(2005년 통계) 꼭 같은 이야기를 1987년의 ‘위기’ 상황에서도 들을 수 있었고, 2000년 중반 이후 또 한번의 ‘위기’ 상황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자가소유율은 1990년 49.2%에서 2005년 현재 55.6%로 6.4‰증가하는데 그쳤다.

집을 소유한 이들이라고 모두 최저주거기준 이상의 주거생활을 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어찌됐던 이들은 집값 급등과 함께 이삿짐을 싸야하는 형편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녀의 집이 위치한 동네가 재개발되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겠지만 말이다.

적절한 주거비 부담의 권리

모든 인간은 적절한 주거에 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적절한 주거란 적절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점유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거의 권리들이 적절한 비용부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주거권의 기본 원리이다.

집이 오로지 상품시장에서만 팔리는 상황에서 이 두 가지 논의는 서로 많이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둘 다 ‘값’의 문제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지금까지 주거정책의 큰 흐름이 시장에서 이른바 서민의 주거소유를 확대하겠다고 호언장담하기를 반복하였다면, 주거권 진영은 그것의 폐해와 현실 불가능성을 간파하고, 새로운 판짜기를 선언한다는 점이다. 주거권의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건 ‘높은 집값’ 그 자체라기보다는, 누구라도 입주가능한 주거의 확보와 점유 안정성의 지속적 확보에 있다.

주택 정책의 일환인 재개발은 또다른 주거권 침해 문제를 낳는다. 재개발로 '쫓겨난' 가난한 사람들은 정작 재개발된 곳에서는 살 수 없다. '뉴타운' 재개발이 결정된 미아 6지구.

▲ 주택 정책의 일환인 재개발은 또다른 주거권 침해 문제를 낳는다. 재개발로 '쫓겨난' 가난한 사람들은 정작 재개발된 곳에서는 살 수 없다. '뉴타운' 재개발이 결정된 미아 6지구.



‘44.4%+α’들의 집이 부족해

정부는 집값 상승의 주범이 공급부족이고, 따라서 공급확대만이 집값을 잡는 만능 특효약이라고 한다. 이른바 투기억제를 위한 다양한 제도의 도입과 공표 시에도 빠지지 않고 ‘공급기조는 변함없을 것’을 당부하는 것을 보면 약방의 감초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그 ‘약’은 세계적·역사적으로 효과가 단기간만 유지될 뿐이고 다른 ‘약’(토지 및 주택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의 환수 혹은 환원)과의 동시복용이 아니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 집이 부족해서 집값이 뛰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많이 짓는다고 집값이 내려간다는 보장은 사실상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결과 서민들의 자가 소유의 꿈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집이 부족한 게 아니라, ‘44.4%+α’들의 집이 부족한 것이고, 그냥 비싼 게 아니라, 바로 이들 ‘44.4%+α’들에게 비싼 것이다.

집값이 비싼 기본적인 이유 그리고 대안 하나

상품으로서의 집은 왜 그렇게 비쌀까? 우선 ‘집’은 덩치가 크다. 면적도 넓고, 건축 재료도 다양하고, 동시에 수많은 노동력이 투여되고, 완성되는 기간 자체도 길다. 그러나 더 중요한 특징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은 (한정된) 토지 위에만 세워질 수 있는데, 자본주의의 발달의 귀결인 도시화는 인구의 밀집에 이은 주거공간의 밀집을 초래한다. 아울러 건축지(위치)에 대한 사용료의 성격인 지대가 가산된다.(물론 이밖에 수도 없이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그럼 집값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덩치를 줄이기 위해 과장된 거품을 꺼트리는 것이나 움직이지 못하는 집을 하늘 높이 길게 늘여 뽑는 것은 일시적인 처방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상품 집’이 가지는 근본적인 특성이나 한계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의 결과적 문제들은 무엇보다 소유가 불가능한 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심지어 대체로 집값이 하향안정화 추세를 보이던 1990년대에도 전세값은 하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집이라는 독특한 상품은 몇 가지 제도로 그 가격을 크게 하락시킨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 가장 중심적인 것은 이른바 ‘사회주택’이다. 사회주택은 주택을 시장의 관점으로부터 주거권의 관점으로 변화시킨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주택이라고 불릴 수 있는 ‘10년 이상의 장기임대주택’은 2.5%(2004년 통계)에 불과하다. 가까운 일본(7%)부터 멀리 유럽(영국 22%, 독일 20%, 네델란드 46%) 국가들의 경우 사회주택의 비율은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 사회주택은 일단 그 비율이 일정량에 이르면, 그 사회의 안정적인 점유를 위한 주택으로 기능한다. 또한 시장부분에서의 집값을 실질적으로 견제해내는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생활공간에 대한 권리 만들기

요즘 TV에선 집값 상승의 이유, 전망, 그리고 집값 잡는데 좋다는 각종 제도모델들에 대한 달변가들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부동산에 거품이 있는가?’, ‘거품 붕괴 시기는 언제인가?’, ‘아파트 반값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한가?’ 등등. TV를 끄고 거리로 나오면, ‘재개발지구 확정 경축’, ‘고도제한 해제 경축’, ‘은행보다 쉬운 대출 안내’라고 적힌 현수막도 보이지만 심심치 않게 ‘철거반대, 주거권 쟁취’라고 적힌 현수막도 눈에 띈다.

최근 이런 질문을 들었다. “그래서 집값이 오른다는 거야, 내린다는 거야?” 그냥 웃음으로 무마하고 넘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집값이 오르거나 내리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사회주택이 발전한 다른 나라의 사례, 주변 환경, 지역의 공원 및 편의시설, 주거약자들을 위한 주거시설 등을 보면서 그러한 생활공간의 권리가 반영되기까지 노력했던 수고로움이 생각나고 이를 통해 어떤 제도들이 형성되었는지 관심있게 지켜봐야 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회주택의 확대나 주거약자들을 위한 주거시설을 포함한 공간에 대한 권리들은 그리 쉽게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은 인권적인 주거에 대한 공간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했던 바로 그/녀들이라는 사실이다. ‘집값’ 문제와 제도 논쟁을 넘어서 생활공간의 권리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재구성하는 것으로부터 주거권이 만들어지고 구체화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