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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직접행동, 저항의 불씨를 보존하라

‘8당은 에코토피아 참가기’ 2

강사가 따로 없는 워크샵과 농사일 거들기

에코토피아의 둘째, 셋째날은 농사일 거들기와 참가자들이 직접 진행하는 워크샵으로 짜여졌다. 강사가 따로 있는 워크샵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워크샵. 난 ‘로켓 스토브’ 워크샵과 ‘막걸리’ 워크샵, ‘대안브라 만들기’ 워크샵, ‘서양음악사’ 워크샵 등에 참가했다. 농사일 거들러 가느라 ‘생태지도 그리기’ 워크샵과 ‘돈 없이 잘 살기’ 워크샵에 참가 못한 건 좀 아쉬웠다.

말걸리 워크숍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 말걸리 워크숍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를 따르고 있다.



참, ‘아무것도 안하기’ 워크샵도 있었다. J님이 주도했는데, 잠을 자도 안 되고 뭔가 의지를 갖고 생각하거나 애써도 안 되고 그냥 자연스럽게 가만히 있는 거라고 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가만히 서 있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고 벌레가 지나가면 벌레를 응시하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셋째 날, 두물머리로 가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우리 팀에 주어진 미션은 딸기밭 정리. 수확하고 남은 딸기를 뿌리째 뽑아야 되는데 이거 힘과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 90도로 줄기를 비튼 다음 뿌리째 쑥 뽑아야 하는데, 힘이 좀 달리면 줄기만 꺾일 수가 있다. 그러면 다시 흙을 파서 뿌리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 잘해야 한다.

한 열 뿌리 뽑았나? 손과 발은 흙 범벅이 되고 땀은 비 오듯 흘러 눈에 들어가 따끔거리고……. 일 시작한지 30분 만에 ‘역시 난 농사체질은 아니야’ 결론 내릴까 하다가, 그래도 내가 먹을 것은 조달할 수 있는 작은 텃밭 하나 일구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새삼 농부들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난다.

농사일을 마치고 점심 먹으러 간 곳은 팔당 유기농지 보존 투쟁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강가 바로 옆의 한 농막.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 매일 이 곳에서 미사가 열린다고 한다. 미술가들도 와서 나무로 물고기들을 만들어 놓고 갔는데, 눈물을 흘리거나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물고기들이 나무 조각인데도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저려온다.

강가 미사 보는 곳에 앉아 강을 바라보다 잠깐 졸았다. 눈을 떠보니 대부분 졸거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저 멀리 시끄러운 포클레인 질과 투쟁의 함성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강물은 유유자적 고요하게 흘러간다. 이렇게 평화로운 팔당인데, 강과 땅과 사람이 어우러져서 잘 살고 있는데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걸까. “우리 그냥 농사짓게 해주세요” 광고 카피를 패러디한 구호에 웃음이 아닌 절실함이 묻어난다.

농사일 끝내고 돌아오니 순두부 만들기가 한창이다. 직접 맷돌로 가는데, 들인 품에 비해서 만들어지는 두부 양은 얼마 되지 않아 좀 실망스럽기 했지만, 간수를 부으며 점점 건더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신나는 직접행동, 우리들의 현장액션

마지막 날 현장액션을 앞두고 전날 밤과 그날 아침, 팀별로 준비가 분주했다. 공연팀은 모여서 노래연습을 어찌나 신나게 하는지 또 즉석에서 곡을 만들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내가 속한 율동팀은 ‘강이 더 좋아’라는 노래에 맞춰 신나는 율동을 선보였다.

삽질을 하려거든 강 말고 밭에서 하시구요
뱃놀이 하려거든 강 말고 바다에서 하시지요
새들이 오지 않는 운하는 싫어
물고기 살지 않는 운하는 싫어
친구들과 물장구치는 강이 더 좋아
푸른 강물 금모래 밭 강이 더 좋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4대강 사업에 찬성하는 보수단체 사람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어서 원하는 장소에서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공원에서 다리 밑에서 거리를 활보하며 풍물 장단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누구는 오카리나를 불었고, 깃발을 직접 만들어 몸에 두르거나 붙이고, 빈 막걸리 병에 돌을 담아 두드리고, 주객이 따로 없는 즐거웠던 현장액션이었다.

현장 액션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에 가서 길놀이를 하고 있다.

▲ 현장 액션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에 가서 길놀이를 하고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성별분업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난 마지막 날 아침 식사당번이었고 여자 셋과 남자 한 명이 같이 식사 준비를 했다. 4~50인분의 밥을 하려니 여간 분주한 게 아니었는데, 밥을 다 하고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한 번도 식사 당번을 하지 않은 남성 참가자들이(남성 참가자들‘만’?!)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제야 차분히 생각해보니 밥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여자였고 남성들은 식사 준비를 함께 하더라도 불을 때는 역할을 주로 했던 거였다. 생태천국에서도 여성주의는 실현이 안 되는 것인가? 순간 좌절하며 내년에도 캠프가 열린다면 식사 당번 남성할당제를 강력히 주장하리라 다짐했다. 직업병인가? 흐~

무엇이 달라졌을까?

에코토피아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에코토피아를 잠깐의 고생, 1박2일식의 야생 체험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생태적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자주 씻지 않아도 살 만하고, 아주 깜깜하지 않으면 불을 잘 켜지 않는다는 것 정도면 달라진 건가? 직접 만들어 먹는 것, 직접 만들어 쓰는 것에 더 관심 갖게 되어서 같이 사는 친구와 이것저것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에코토피아가 나에게 새삼 상기시켜 준 것은 이런 자발적인 형태의 직접행동이 이 짜증나는 시대에 우리가 숨 쉴 구멍이라는 사실이다. 지방선거를 경과하며 답답했었다. 대중투쟁이 사라진 시대, 누군가는 사람들이 투표라는 짱돌을 들었다고 평가했지만, 자신을 표출하고 스스로를 조직할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막다른 선택이었을 뿐, 그것이 투표가 세상을 바꾸는 유효한 방법임을 증명해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권력이 만들어 놓은 선거 프레임 안에 갇혀서 드는 투표 짱돌, 지도부가 만들어가는 판에 대중은 객체로 참가하는 박제화된 투쟁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보고 싶었다.

비록 투쟁의 끝이 패배일지라도 그 투쟁의 과정 속에 살아있는 너와 나의 에너지, 자발성과 창조성이 투쟁의 고갈을 막아준다. 저항의 불씨를 보존해준다. 폴리스라인을 뚫는 물리적 투쟁이 당장에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패배가 패배로만 남지 않게 해 준다. 패배 속에서 승리를 볼 수 있는 변증법적 가능성이다.

신안리 동네 길을 동지들과 함께 자전거 타고 달리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꽹과리와 장구 장단을 넘나드는 태평소 가락이 지금도 들려오는 듯 하여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 순간 분명 천국이었는데 지금, 우리의 에코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덧붙임

나랑 님은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