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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준주택’에 갇혀버린 고시원, 주거권은 어디로

홈리스 개념 정의와 정책 마련 필요

주택이기도 하고 주택이 아니기도 하다. 서울에서만 이미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 이 곳을 주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겨우 누울 만한 공간에,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하는, 창문 없기도 다반사인 곳을 주택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고시원에 국토해양부는 ‘준주택’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언뜻 보면 현실을 융통성 있게 반영한 정책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주거권에 기반을 두지 못한 접근이 만들어낸 ‘준주택’ 정책은 주거불평등의 현실을 고착화시킬 뿐이다.

‘현대판 쪽방’

고시원은 ‘현대판 쪽방’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쪽방과 비교해 거주민의 평균 연령이 낮은 편이다. 또한 매우 열악한 수준부터, 비교적 넓고 냉․난방 시설까지 갖춘 고급형까지 다양하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한 『비주택 거주민 인권상황 실태조사』(아래, 비주택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고시촌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그 후 대학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다가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를 계기로 주거 공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점차 지하철 역 인근이나 주택가로 확산되면서 ‘원룸텔’ 등으로 불리는 고급형 고시원까지 나타났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현재 고시원은 3,738곳으로, 2년 전보다 20% 증가했는데, 직장인이 몰리는 강남․서초․동작․구로․송파구에 43%가 밀집해 있다.

고시원의 형태가 다양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일단 면적이 매우 좁다. 주택법의 최저주거기준에 따르면 1인가구의 최소 주거면적은 12㎡다. 그러나 이런 면적 기준을 만족시키는 고시원은 거의 없으며 대체로 한 사람이 누울 만한 면적이다. 당연히, 최저주거기준에 명시된 전용부엌이나 화장실 등 필수적인 설비가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고시원 거주민들이 호소하는 불편함 중 하나는 방음이다. 비주택조사에 따르면 비슷한 주거비를 지불하는 곳보다 고시원에서 거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생활보호인데,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사생활을 자제해야 하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칸을 나누는 경계벽 등으로 합판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인데, 이는 미로형 내부구조와 좁은 복도 문제와 맞물려 화재사고 위험을 높인다. 채광이나 환기가 가능한 창문이 없는 경우도 많아 거주민의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정책 무대에 등장한 고시원

2006년 송파구의 한 고시원 화재로 8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고시원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해 소방재난본부 주관으로 전국 4,211개 고시원에 대한 특별점검이 실시되었고 2009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고시원업을 추가하면서 고시원의 안전에 대한 감독이 제도화되었다. 이때까지 고시원은 화재발생위험이 높은 건축물로 다뤄졌으나 이번 국토해양부의 준주택 개념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올해 4월 국토해양부는 고시원, 오피스텔, 노인복지주택을 준주택의 종류와 범위로 설정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작년 7월 건축법 시행령 개정으로 고시원에 개별 욕실과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이 합법화되면서, 이미 고시원은 주거의 한 양식으로 자리 잡을 채비를 갖췄다. 이번에 정부가 준주택 개념을 도입한 이유도 그것이 이미 “사실상 주거시설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시원은 여전히 주택이 아니다. 고시원은 건축법 시행령을 통해 제2종근린생활시설 또는 숙박시설로 규정되는 건축물이다. 주택법 상 준주택으로 규정되지만 주택법의 최저주거기준 적용은 받지 않는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준‘주택’이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거실태조사 대상으로 포함될지 여부도 아직 검토되지 않았다고 한다. 준주택이 되면서 달라지는 것은 바로 국민주택기금으로 저리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토해양부는 이미 주거시설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는 거주민들에게 어떻게 적당한 수준의 주거를 지원할 것인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5월 중 건축법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 고시원에 채광이나 주요구조물의 내화 구조 등의 조건을 의무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수준의)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칠 것은 분명하다.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통해 고시원의 개보수를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개보수를 ‘추진’할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개보수가 이루어진다면 현재 거주민들의 주거 환경이 조금은 나아지겠지만 개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대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결국 주거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고시원들이 국민‘주택’기금의 지원까지 받으면서 공급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국민주택기금으로 개보수되는 고시원들에 대한 임대료 제한 등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고시원 거주민들을 더욱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고시원 거주민들

고시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고시원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2008년 소방재난본부의 전수조사결과에 따르면, 수도권의 고시원 거주민은 138,587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1인 가구다. 이들 중 단순노무․판매․서비스종사자가 74.4%, 실직자는 10.3%이다. 고시원 이용요금은 월 17~25만원 수준인데 월평균소득 50만원 이하가 33.3%(46,179명)이다. 만연한 실업과 경제불황, 감당하기 어려운 집값의 영향으로 1인 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없으며 그 곳에서조차 월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월 소득의 30%는 국제적으로 주거비 부담을 평가하거나 임대료 규제나 지원 등의 주택 정책에서 기준으로 삼는 비율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주택정책이 1인 가구를 배제하고 있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청약제도의 가점제는 1인 가구를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어내고 있으며, 단독세대주의 입주가 가능한 40㎡ 이하의 공공임대주택은 거의 공급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대출과 같은 제도는 35세 미만의 단독세대주를 아예 자격에서 배제하고 있다.

1인 가구의 비율이 계속 높아지면서 정부도 1인 가구를 염두에 두는 정책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도시형생활주택’이다.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는 건축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국민주택기금 대출 규모도 확장했다. 그러나 도시형생활주택 1호로 알려진 ‘아데나534’는 분양가 1억4,900만원이며 주변 시세를 고려해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의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시원 거주민들은 입주가 불가능한 곳이다. 1인 가구의 주거권이 아니라 종자돈이 있는 사람들의 임대수익만을 보장하는 정책인 셈이다.

고시원 거주민들이 홈리스라는 인식 필요

홈리스는 주거권의 다양한 문제들 중에서도 국가에 핵심의무를 부여하는 문제다. 즉 즉각 대책을 마련하고 국가 정책에서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홈리스 정의와 실태조사가 중요하다. 작년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한국의 홈리스 규모를 묻자 정부는 2008년 말 기준 12,328명이라고 답했다. 민간단체는 홈리스 규모를 173,302명으로 추정했다. 열 배가 넘는 차이가 생긴 이유는 바로 홈리스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정부는 거리노숙인과 쉼터 및 시설에 거주하는 노숙인만을 집계했다. 민간단체의 홈리스 규모는 홈리스지원유럽연합(FEANTSA)가 제시한 △ 극도의 홈리스 상태에 있는 집단(주거상실집단), △ 주거상실의 위기에 처한 집단(주거불안집단), △ 적절한 주거상태에서 배제된 집단(과밀주택, 열악한 주택 등 주거배제집단)을 참고해, 그 중 통계를 이용할 수 있는 집단만을 집계한 것이다. 민간단체가 집계한 규모조차 과소평가된 것일 수 있다.

홈리스 규모와 사회경제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주택정책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홈리스에 대한 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홈리스에 대한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 대개는 몇 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를 홈리스로 파악하는데 그 요건들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안전한 출입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영국), 점유 이후 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경우(북아일랜드), 과밀하고 점유자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는 경우(스코틀랜드), 가구 딸린 방의 단기 임차인(프랑스), 개인이 필요로 하는 적절한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집이 일반적으로 제공하는 경제적, 사회적 지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호주) 등. 한국이라면 고시원 거주민은 충분히 포함되는 개념이다.

비주택조사에 따르면 고시원 거주민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주거정책은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제공’이 57.1%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현재 공공임대주택은 고시원 거주민들의 소득으로 거주하기 어려울뿐더러, 1인 가구라는 조건 때문에도 접근하기 어렵다.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더라도 정부는 고시원 거주민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고시원 준주택 지정이라면, 고시원 거주민들의 이주를 지원할 계획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고시원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할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주택정책은 주거권에서 출발해야

정부는 여전히 주택공급이 주거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 그러나 한국 주택정책의 역사는 공급되는 주택들이 집이 필요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음을 충분히 보여준다.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가 주택을 필요로 하는지가 분명해져야 한다. 1~2인 가구를 위한 주택정책이라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1~2인 가구의 현실을 봐야 하는 것이다.

‘준주택’이라는 용어는 주택의 특성을 강조하는 데 적절한 용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고시원 준주택 지정은 건설사업자에게 저리의 자금 대출을 허용하면서 고시원 거주민들은 주거권 침해 상황에 방치하는 정책일 뿐이다. ‘주거’의 성격이 반영되어야 할 지점에서는 최저주거기준을 포기하고 ‘건축물’의 성격이 강한 지점에서는 국민‘주택’기금을 지원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 고시원 거주민들에게 적절한 주거를 제공할 수는 없다. 현재 거주시설로 이용되고 있는 고시원의 개보수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점진적으로, 주거용으로 이용되는 고시원을 없애나가는 방향과 함께 가야 한다. 그리고 소득 수준이 낮은 1인 가구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계획과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시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고시원조차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만을 낳을 수 있다.

홈리스는 적절한 주거비 부담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즉 주거비 부담이 적절한 수준이며 점유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주택 공급, 매입임대, 대출제도 등 다양한 접근을 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접근을 하더라도 주거가 인권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