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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타임머신을 내놓아라!

2008년 촛불집회를 떠올리면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모여 정말 평화롭게 집회와 시위를 진행했다. 이로 인해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정부 관료들이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얼마가지 않아 완전히 바뀌었다. 경찰을 비롯한 공안당국은 모임이 잦아들자 집회의 수많은 참여자들을 형사처벌하였고, 촛불집회에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불법의 근거가 바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제10조였다. 이 조항의 내용은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으로 “다만, …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경찰관서장은 …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는 예외가 붙은 것이었다. 촛불집회는 많은 시민들이 퇴근 후 참여할 수 있는 저녁 6~7시 이후, 즉 해가 진 후에 열렸기 때문에 이 조항에 따라 무조건 불법집회가 된다는 것이다.(그러고 보면 불법집회 되기 참 쉽다.)

하지만 2009년 9월,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반전을 맞았다. 비록 재판관들마다 근거는 달랐지만,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 야간옥외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올 6월 30일까지 국회가 이를 개정하지 않으면 그 효력을 상실된다고 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의 조진형 의원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라는 문구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로 수정하면서 예외적 허용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였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법률적인 여러 문제들을 갖고 있다. 이를 밝히기 위해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민변의 법률가들은 인권단체연석회의와 함께, 4월 1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첫 번째로 한나라당의 개정안이 ‘기본권의 최대보장의 원칙과 최소제한의 원칙’이라는, “자유 보장에 관한 헌법의 정신”에 반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사실 이 원칙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시민이 갖는 권리에 대해 보장은 최대한으로 하고, 제한은 필요한 경우 최소한으로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의 모든 집회는 무조건 불법이라고 규정하는 이 개정안은 위 원칙과는 반대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제한하면서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것이기에 위헌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두 번째로 “집회의 자유에 담겨 있는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집회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그 집회를 개최하는 자가 시간이나 장소, 방법 및 내용 등을 자유롭게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경찰이 집회의 참가자나 내용을 검토하고, 집회 시간이나 장소를 지정하여 이에 따를 때에만 집회를 할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 때, 시민들이 집회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이처럼 밤 10시가 되었다고 일괄적으로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은 집회 개최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다. 결국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개정안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적절하지 못하고(방법의 적절성), 제한의 정도를 최소로 하고 있지 않으며(침해의 최소성), 다른 공익적 요소와도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법익의 균형성) 등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야간에 집회를 하면 시끄러워서 어떻게 쉬느냐’라는 반문을 하면서 야간집회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야간에 주거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의 경우, 소리를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 이처럼 제한의 정도를 더 약하게 하는, 더 나은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개정안과 같이 밤10시부터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는 ‘집회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결코 적절치 못하다. 뿐만 아니라 집회의 자유보다는 일반적․추상적 위험에 기초한 공익의 보호에 일방적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데에도 실패하고 있다.

이처럼 집시법 제10조에 대한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제한하기 위해 만들진 반헌법적인 위헌법률안이다. 하다못해 집회의 장소나 방법을 제한받는 경우에는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라도 할 수 있기라도 하지만, (그렇다고 경찰 마음대로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와 같이 특정한 시간대에 집회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타임머신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이를 개최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기 때문에 집회의 자유에 더욱더 치명적이다. 또 이런 이유로 금지 시간이 밤10시에서 12시로 늦춰진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집시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간이라는 이유로 집회를 일괄적으로 제한하려고 하는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정안은 즉각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 집회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현행 집시법을 전면 폐지하고 새로운 법과 질서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임

이호영 님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