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차별, 다르게 말하기

[차별, 다르게 말하기⑤] 게이의 삶과 자긍심을 노래하다

‘음악’과 춤추는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G_Voice)’

편집인 주

인권운동에서 차별은 어떤 의미일까? 차별에 반대하는 것은 어떤 운동의 과정을 통해야 하는 걸까? 차별로 인한 피해 드러내기는 ‘차별은 나쁘다’는 인식을 확산할 수 있겠지만, 이는 쉽게 피해자를 ‘피해자화’하는 것으로 가두게 될 수도 있다. 차별을 당했다는 인식보다는, 차별을 당함으로써 피해자가 되었다는 인식이 더 수치스럽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피해자화하지 않으면서 차별을 드러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권운동에서 의미 있는 여러 시도들을 통해 차별을 드러내는 다양한 고민들을 들어본다.

표현하다

나는 ‘표현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말과 비슷한 뜻인 영어 단어 ‘익스프레스(express)’나 ‘쇼(show)’가 지니고 있는 소리상의 어감과 이 단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활용 예도 좋아한다. 대책 없이 쏟아내는 감정이나 행위들이 아닌, 생각을 갖고 나타내는 언어나 행위 등을 말하는 이 말은 내게는 언제나 힘이 되는 도구다. 게이들이 좋아하는 유명 팝가수 마돈나(Madonna)의 히트곡 ‘너 자신을 표현해봐(Express yourself)’는 언제나 내게 힘을 주는 말이다. 헌법 21조, 22조에도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상상과 생각을 ‘표현하는’ 현실화 단계에 이르면 그만큼 그에 따른 책임감도 가질 수 있고, 상당한 시간을 갖고 준비한다면 그 위력도 대단해진다.

나는 2003년 11월 말경 첫 모임을 시작한 한국 최초이자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내 소모임 ‘지보이스(G_Voice)’ 단원으로 활동한지 올해로 6년째다. 나는 지보이스를 통해 ‘표현한다’는 말을 실천한다. 지보이스는 남성 동성애자(게이)를 단원으로 하는 노래 모임이다. 게이들의 노래 모임이니 그들의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고,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노래의 소재가 된다. 부모나 친지들에게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말할 수 없고, 직장 동료나 편한 친구들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한 농담조차 할 수도 없고, 편한 술자리에서도 언제나 이성애자인척 연기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지보이스는 진지한 해방구이자 유일한 놀이터이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무대에 오른 지보이스

▲ 올해 퀴어문화축제에서 무대에 오른 지보이스



노래하다

차별을 노래로 표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노래는 즐기기 위한 예술 장르다. 편견어린 시선, 차별적인 말들 때문에 우울한 게이들에게 노래마저 차별을 이야기해야하니 자연스레 ‘삔’을 꽂고 싶어진다.(‘삔을 꽂는다’는 말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싸움에 나설 때 치마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삔을 치마 가랑이 사이로 꽂아 움직이기 편하게 한다는 의미로, 무언가에 저항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였다) 올해 제4회 지보이스 정기공연의 제목을 ‘삔 꽂는 날’로 정한 것은 그 절실함에서 비롯되었다. 20여명의 작은 목소리들을 모아 한 목소리로 표현하는 발성, 노랫말에 담긴 의미들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이 거리 누군들 슬프지 않으리’ 이 가사는 지보이스가 작사, 작곡한 <낙원동 블루스>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게이들이 자주 시간을 보내는 낙원동 주변의 거리에서 사랑에 힘들어하고, 삶에 부대낄 때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당당히 살아가보자는 의미를 담은 노래다. ‘UP, 세상이 거꾸로 가도 UP, 먹구름 몰아쳐 와도 UP, 독하게 웃으며 일어서 다시 시작해!’ 이 노래는 미국의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스톤월’이라는 술집에서 1969년 6월 28일 새벽에 있었던 성소수자 최초의 항쟁인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노래다. 간단한 안무와 랩이 섞인 이 노래는 어떤 공간에서도 발랄하게 엉덩이 흔들며 춤추며 노래 부를 수 있는 상큼한 노래다.

물론 노래하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나 한 목소리로 화음을 만드는 합창은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지보이스는 여러 목소리를 하나의 목소리로 만드는 것을 꿈꾸지 않는다. 하나된 목소리보다 함께 마음을 모아 만들어가는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긴다. 지보이스가 2006년 12월 16일 첫 공연을 시작한 이후, 해마다 있는 정기공연은 이제 우리들의 과제다. 정기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떠한 주제로 할지, 무슨 노래를 할지, 어떻게 단원과 스텝을 구성할지, 예산은 어떻게 꾸릴지 매번 고민한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멋진 공연’에만 빠지지 않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이 바로 공연을 통해 단원 한명 한명이 말하는 소감들이다. 게이로서 무대 위에 올라가 노래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그 많은 관객들 앞에서 솔직하게 마음 속 이야기를 노래로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라도 ‘나는 게이’라고 당당하게 커밍아웃하기가 쉽지 않고, 혹시나 아웃팅을 당하지는 않을까 가슴 졸인 단원들도 있지만 결국엔 모두들 용기를 내어 무대에서 노래한다. 그리고 공연을 통해 힘을 얻은 성소수자나 이성애자들의 후기 하나 하나를 접하다 보면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감동에 젖기도 한다.

춤추다

지보이스에게 춤은 나름 경쟁력을 위한 비장의 카드다. 춤이 단지 분위기를 띄우고 흥을 돋우는 요소만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인 면에서는 한국의 기존 클래식 합창단과는 다른 또 다른 합창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춤 속에서 우리는 게이들의 솔직함과 당당함을 드러낸다. 아직은 안무 역량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춤 속에서 우리는 좀더 도도하고 섹시하게 허리를 세우려고 노력한다. 춤을 통해 지보이스는 게이 섹슈얼리티의 자긍심과 건강함 그리고 도전정신을 관객들에게 건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고정된 성별 관념을 무너뜨리기 위함이고, 게이의 문화 감수성을 통해 역동적인 게이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제 춤은 지보이스 단원에게도, 또 관객에게도 공연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지난 10월 24일 진행된 지보이스 정기공연 모습

▲ 지난 10월 24일 진행된 지보이스 정기공연 모습



지난 10월 24일 있었던 지보이스 정기공연에는 400여 객석이 꽉 찰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함께 공연을 즐겼다. 공연을 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지보이스 공연을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차별도 춤추고 노래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함께 그 무대를 즐기자고 건네고 싶다. 내년에도 계속해서 지보이스의 정기공연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내년의 제5회 지보이스 정기공연의 주제를 ‘굳세어라 게이들’이라고 하면 너무 신파가 될까? 아니 그만큼 수많은 차별의 위협에도 더 단단해지고 싶어서가 아닐까?
덧붙임

이종걸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내 소모임 지보이스(G_Voice) 단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