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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아름다운 동행 20년’, 당신은 누구와 동행하나요?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스무 살 전교조에 보내는 돌림편지

전교조 창립 20주년에 보내는 편지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을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 외치니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보이는가, 강물/ 참교육 피 땀 흐르는
들리는가, 함성/ 벅찬 가슴 솟구치는
아, 우리의 깃발 교직원노조 세워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

오는 28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20주년을 맞는다. 전교조 결성을 불과 며칠 앞두고 당시 교사들이 직접 작사, 작곡했던 <참교육의 함성으로> 노랫말은 전교조 결성의 대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해직과 구속․수배라는 폭압 속에서도 당당히 올랐던 ‘불법’ 전교조의 깃발은 눈부셨다. 시대의 공기는 차디찼지만, 침묵과 기만의 교단을 박차고 나온 교사들의 결기도, 그 깃발을 함께 움켜쥔 학생들의 연대도 아름다웠다.

촌지․불법찬조금 몰아내기, 교과모임 활성화, 불합리한 업무 강요 폐지, 유아교육법과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등은 전교조가 빚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그러나 올해,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쳐 온 스무 살 전교조는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교사들의 실천을 뒷받침해야 할 조직은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교사들마저 ‘망해가는 조직에 몸담은 느낌’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활력을 잃었다. ‘참교육’을 말하지만 참교육의 내용은 여전히 모호하고 학생과 연대할 준비도 미흡하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서 드러났듯,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차별구조로부터 전교조 역시 자유롭지 않음이 드러났다.

제2의 참교육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전교조. 나이 서른에 전교조는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게 될까? <참교육의 함성으로>는 학생인권과 동행하는 노래가 될 수 있을까?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그 바람을 담아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전교조에게 돌림편지를 썼다.

• 청소년은 들러리가 아니에요. 청소년도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는 동지로써, 전교조의 행동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스리슬쩍 몸이 무거워지고 찌뿌듯한 날들이지만, 20년이란 긴 시간을 걸어온 만큼 마음 잘 다지고, 앞으로도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난다


• 전교조는 교사 단체인데도 학생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로고를 "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대표 로고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상징이 아닌 실천이 되고 있긴 한가하는 생각이랄까, 회의랄까 그런 게 좀 듭니다. 과연 전교조는 학생 중심으로 생각하고 투쟁하고 있나요? (전 그냥 전교조가 교사노조이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적어도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라거나 아이들의 행복이라거나 참교육 같은 슬로건은 내려야겠지요.)
20년 동안 해직 - 복직 - 합법화 등 긴 길을 걸어오셨고, 그런 와중에 전교조의 위상과 성격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조가 스스로 쉬면서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런 휴식을 취할 여유조차 주지 않네요.
- 공현

• 요즘 교사와 관련된 나쁜 사건을 알리는 뉴스를 보기 두렵습니다. 혹시 전교조에 가입한 조합원 교사는 아닐까라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렇게 불편한 걱정이 드는 건, 교육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는 연대조직인 만큼 가질 수밖에 없는 높은 기대와 최근 그것을 충족해주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겠죠. 험난했던 20주년. 잠시 조직을 추스르며 부족한 건 무엇이었나, 고민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답은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조가 추구하고 있는 참교육을 잊지 않고, 성찰하며 현장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 그런 전교조의 모습을 보며 (20주년을 맞아 내건)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슬로건처럼 학생청소년 주체들도 전교조를 지지하며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폭력의 교육'을 '인간의 교육'으로 바꾸기 위해 함께 뚜벅뚜벅 걸어갈 전교조를 지지합니다.
- 전누리

20년 전, 김준권 교사가 <참교육의 함성으로> 노랫말을 형상화해 그린 판화. 스무 해 전 참교육은 학생을 ‘살리고’ ‘무등 태워주는’ 교사로도 감동을 주었을지 모른다. 오늘날 참교육은 또 다른 도전을 맞고 있다.<br />

▲ 20년 전, 김준권 교사가 <참교육의 함성으로> 노랫말을 형상화해 그린 판화. 스무 해 전 참교육은 학생을 ‘살리고’ ‘무등 태워주는’ 교사로도 감동을 주었을지 모른다. 오늘날 참교육은 또 다른 도전을 맞고 있다.


• 전교조는 조직이 아니라 운동이었습니다. 온순하고 부지런한 기계를 생산하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날카롭게 구분해냈던 운동, 정권과 마피아의 손아귀에서 학교를 빼내 주인에게 돌려주는 운동, 대안적 가치들이 학생들의 삶 속에 흘러 들어갈 물꼬를 튼 운동, 교사도 노동자임을 선언함으로써 다른 잠든 노동자들을 일깨워냈던 운동…. 전교조가 겪어온 노고에 빚지지 않은 이가 없는 이유입니다. 전교조가 더욱 커져야 할 이유입니다. 전교조가 결코 ‘중립적’이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전교조가 그들의 표적이 되어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는 이유입니다.

전교조는 조직이 아니라 교사들이었습니다. 학교야말로 정치적인 공간임을 꿰뚫어볼 줄 알았던, 학생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기 위해 밤새 뒤척일 줄 알았던, 교실 안에 만든 소왕국에서 선량한 군주 노릇에 자족하지 않았던, 교육과 학생을 집어삼키는 괴물을 막을 순 없어도 막아야 한다고 부르짖을 줄 알았던 이 ‘대안 없는 발딱교사들’이야말로 교육의 변화를 일궈온 거름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암약’하는 이 ‘불온한’ 교사들이야말로 전교조를 살아있게 만든 심장이었습니다. 대안 없는 비판은 그만해야 한다고요? 그 소란스러움이야말로 대안을 찾는 틈새를 열어오지 않았던가요? 전교조를 살린다면서 이들의 심장에 마취제를 놓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다시, 전교조는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입니다. ‘참교육’, ‘학생을 위한 교육’이라는 두루뭉술한 가치만으로는 이제 힘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차별구조가 그대로 녹아있는 학교와 교직사회에 균열을 낼 수 없습니다. 가장 가혹한 계급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식탁에서 빵마저 빼앗는 이들의 ‘고상한’ 도덕이 군림하는 교육현장에서, 준법이 인권을 호령하는 교육현장에서, 차별구조가 지배하는 교육현장에서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은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입니다. 전교조가 인권을 교육운동과 조직혁신의 좌표로 삼아야 할 이유입니다. 학생에게 어떤 교육을 선사할까 고민하기에 앞서 학생과 연대할 준비부터 해야 할 이유입니다. 소외된 학생을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일 못지 않게 자력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 배경내

• 생일 축하해요. 촛불 하나하나 모여, 더 나아가 교육의 횃불이 되길 바랍니다.
- 박고형준
덧붙임

난다, 전누리, 공현, 박고형준, 경내는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