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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레즈비언 ⑥] 신문 모니터링을 마치며

내가 상담소에서 언론모니터링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들의 호모포비아를 마치 취재 기사인 것처럼 보도해오던 거대 언론사들과 한 판 붙어볼 수 있겠다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지난 해 보도된 레즈비언 관련 기사라고 해봐야 열 손가락 안에 드니, 물고 늘어질 만한 구실이 없었다.

지난 해 레즈비언 관련 신문 보도의 큰 흐름중 하나는 바로 냉대라고 이름 붙이기도 어려운 ‘무관심’ 그 자체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에서 동성애는 비정상에 정신질환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10대 레즈비언은 일탈의 주범이었으며, 임산부의 불안정한 건강상태가 동성애의 원인이랍시고 지목되기도 했다. 이렇게 동성애가 하나의 현상 내지 증상으로 치부되던 시기를 넘어, 최근 들어 인권과 관련된 이슈의 단골로 자리 잡자, 신문에서 동성애는 조용히 걸러지고 있다. 그저 영화 <쌍화점>의 역사적 진위 여부나, <엔티크>의 흥행 여부 판단에 어울리는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인권정책팀에서 2008년까지 실시한 5개 주요 일간지 모니터링 결과, 레즈비언 관련 기사를 포함한 동성애 관련 기사는 좋은 기사이건 악의적인 기사이건 그 수가 해마다 대폭 줄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차별금지법과 인권선언 등 국내의 주요 이슈에 대한 보도는 온데간데없고, 외국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스캔들 기사, 캘리포니아 동성결혼 반대 여론, 성직자들의 발언 등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런 기사만 보다보면 우리나라 언론은 동성애자 인권실태보다는 미국 대선 후보들이 그들 나라의 동성결혼법 혹은 시민결합법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에 더 관심 있는 듯하다.

이는 여론이 형성될까 두려운 사건이라면 그저 무시해버리는 보수 신문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진보적 신문이라고 해서 달리 구별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신문에 비해 레즈비언 관련 이슈를 적극 보도하는 등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여지가 없지는 않았다. 예전보다 잘못된 용어사용(동성연애자 등)도 눈에 띄게 줄었으며, 성급히 전하던 종교계의 동성애 ‘반대’ 발언도 좀 더 균형 있게 보도하려고 애썼다. 보수 신문의 기사들은 어느 면에서도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거나, 어느 면에서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잃지 않거나, 그저 가십기사에만 몰두한다.

불편한 관심

하지만, 진보 신문의 동성애 관련 기사에서 드러나는 아쉬운 공통점이 있다. 신문기사가 기자나 언론사의 동성애를 둘러싼 깊은 고민을 보여준다기보다, 동성애 관련 이슈에 접근하려는 의지에 비해 노력이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몇 마디 긍정적 표현이 진보의 척도라고 여겨지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신문기사에도 개인적인 생각이야 어찌되었든 그저 ‘관심 있는 듯한’, ‘편견 없는 듯한’ 관점이나마 드러내려 애쓰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동성애자는 여전히 ‘그들’일 뿐이며, 엉뚱하게 낙태 등과 연관되어 진보가 다루어야 할 과제 목록 안에서 정체성을 갖는다. ‘동성애 문제’ 는 동성애자들을 둘러싼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동성애자들의 문제에 머문다. 이런 시각에서 나온 기사들은 기껏 외국의 동성애 인권실태를 분석하려다 그만 ‘이슬람권에서는 동성애가 처형감이더라’ 하는 무시무시한 결론으로 끝맺기도 하고,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에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도 않으며, 지지의 발언을 써 내려가다가도 ‘어쨌든 파격적’ 이란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고민해야 하는 것

대놓고 악의적인 보도가 줄어든 것은 다행이나, 악의적 보도가 왜 문제가 되었던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묻혀버리지는 않을지 돌아볼 일이다. 긍정적인 보도가 계속되는 것도 다행이나, 그러한 보도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우는 것, 왜 그래야 하는지 아는 것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말하기를 배우기가 더 쉽다. 남들이 말하는대로 따라 말한다고 해서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풀이과정은 소홀히 하고 공식만 외워서 수학문제를 잘 푸는 사람은 없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아는 척 하지 말고 손을 들어 물어보라던 선생님 말씀은 어딜 가나 유용한 것 같다. 왜 동성애가 선정적으로 묘사되지 않아야 하고, 각종 원인설에 휩싸이지 않아야 하며, 찬성·반대의 범주로 나뉘어 동성애자들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재단되지 않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그저 친한 척보다 절실하다.
덧붙임

야릉 님은 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