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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신문을 찢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2006 레즈비언 보도 모니터링 발표

<편집인주>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인권정책팀에서는 지난 2006년 한 해 동안 보도된 레즈비언 관련 기사들을 분석하여 우리 사회의 주요언론인 신문에서 드러난 레즈비언에 대한 잘못된 표현과 레즈비언 인권 측면에서 지양되어야 할 기사들을 선별하고 진단했다. 이 활동의 결과로 한국레즈비언상담소는 『2006 레즈비언 보도 모니터링 “레즈비언, 신문을 찢다”』 자료집을 발간하며 지난 3월 30일 토론회를 진행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활동가로부터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레즈비언, 신문을 찢을 수밖에 없는

최근 들어서 동성애 관련 영화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는 ‘금기’가 아닌 신선한 외침을 주는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요즘 불고 있는 ‘친 동성애’ 물결을 마주하면 레즈비언으로서 여간 의아하고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혹은 영화를 둘러싼 대중들의 관심과 호응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정말 우리 사회의 동성애 혐오적 인식이 변한 것일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착각은 금방 깨지기 마련이다. 습관적으로 혹은 사회 돌아가는 걸 읽기 위해 받아보는 신문을 펴들면서, 그리고 하다못해 무심코 인터넷의 미디어 창을 열고 뉴스를 보다 보면 여전히 동성애 혐오적 편견이 담긴 이야기들은 언론을 통해 사람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동성애 관련 보도의 양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레즈비언을 비롯한 동성애자의 억압적 현실들이 변화되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여전히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들은 ‘동성애’를 흥밋거리나 ‘희한한 이야기’로만 다루고 있을 뿐,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편견대로 유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인식을 가지고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거나 담아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6 레즈비언 보도 모니터링>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하게 되었다. 특히 동성애 혐오증을 퍼트리는 매체 중에서 가장 먼저,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준다고 알려진 신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문은 정말 믿을 만한가? 적어도 동성애 관련 보도에 있어서는 확실히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레즈비언, 신문을 보며 눈을 씻어내다

레즈비언 보도 모니터링은 △선정성 △혐오와 편견 △공정치 못한 인용 △잘못된 용어 사용 △차별의 은폐와 탈정치화 등의 다섯 가지 부분을 집중 분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동성애자의 권리 보장을 향한 기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언론은 줄곧 ‘동성연애’와 ‘동성애’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트랜스젠더’와 ‘게이’도 구분하여 보도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동성애자 인권 단체들이 활동 초기(1990년대 중반)부터 언론 보도의 이같은 부적절한 용어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2006년 모니터링 결과에서도 레즈비언 관련 보도 624건 중 82건, 13.1%의 기사가 용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동성애를 선정적으로 그려내는 문제, 동성애 자체가 에이즈·성병의 유일한 혹은 주된 감염 경로인 것처럼 보도하는 문제, 동성애를 질병이나 일시적 감정으로 간주하는 문제들 역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사진 또는 그림을 통해, 혹은 불필요한 성적 묘사를 통해 선정성을 높이기도 한다. 동성애를 여전히 동성 간 성행위에만 집중된 것으로 보도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를테면 언론은 동성 간 성폭행을 ‘동성애를 한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 동성애와 동성 간 성폭행을 동일시하며 심지어 성관계와 성폭행을 구분하지도 못하는 무지를 드러냈다. ‘동성애를 폭로했다’ 등의 표현을 통해 동성애를 폭로되어야 할 ‘나쁜 짓’이나 ‘범죄’로 읽히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언론의 행태는 결국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유포하고 편견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기자가 직접적으로 혐오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전문가의 말이나 연구결과를 인용해 혐오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동성애의 원인에 대한 가설과 관련한 연구결과를 마치 정설인 것처럼 보도해 편견을 조장하고, 동성애를 금지하는 종교계의 입장을 강하게 부각시키기도 하며, 예술작품의 내용을 빌어 혐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심지어 동성애를 혐오하는 개인의 말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그대로 싣기도 한다. 인용한 이야기라고 해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의견을 퍼뜨린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고자를 선정하는 것, 인용할 말을 채택하는 작업은 기자나 편집국이 고유하게 담당하고 있는 일이다. 기고 및 인용에 있어서도 공정성을 담보해낼 수 있도록 언론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최근 신문 보도의 흐름 중에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비가시화 하는 보도의 문제가 새롭게 지적될 수 있다. 동성애를 △비밀스럽고 사적인 것 △단지 개인적·문화적 취향 △낭만적인 것으로 보거나, 동성애자의 존재를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나 진보의 척도로 도구화한 것 등과 같은 보도들이 바로 그런 문제들이다. 차별을 비가시화하고 탈정치화한 보도는 23.6%에 달해, 34.6%인 혐오와 편견을 담은 보도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동성애 관련 영화들이 큰 호응을 얻으며 이와 관련해 ‘동성애 영화 열풍’에 대한 보도들이 넘쳐났다. 레즈비언 관련 보도 중 문화 관련 보도는 45%로,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그러나 신문 기사들은 단순한 유행으로서 영화 속 동성애자에 대한 관심을 두고 동성애를 ‘문화적 코드’로만 이해할 뿐, 영화 밖의 실제 동성애자들의 삶이 어떠한지는 조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동성애를 ‘문화적 코드’로 보는 시선은 곧 동성애를 단지 ‘개인적인 취향’으로만 읽는 시각으로 연결되었다. 언론은 ‘동성애’나 ‘동성애 정체성’이라는 용어 대신, ‘동성애 성향’ 또는 ‘성적 취향’, ‘성적 기호’라는 단어를 더 자주 언급했다. 하지만 동성애 정체성을 개인적인 취향이나 기호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괴롭힘을 삭제해 버릴 위험을 갖는다.

동성애 작품을 소개할 때 동성애 관계를 지나치게 아름답고 고결한 것으로 보는 경향도 많았다.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낭만화’는 무조건적인 혐오와 정반대에 위치해 있을 뿐, 결국 편견의 일종이다. 사람들은 ‘금기를 이겨낸 사랑’에 감동받지만 그 금기를 만든 책임이 우리 사회에, 바로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다. 즉 동성애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와 관련된 신문 보도도 넘쳐났지만, “동성애가 한 때의 문화적 유행이 될 때, 동성애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고민할 기회는 차단”되고 말았다.



레즈비언, 신문을 찢기 일보 직전

2006년 한 해, 신문들은 레즈비언과 관련된 이야기를 얼마나 다루었을까? 전체 신문 기사 중 동성애 관련 전체 보도 중에서도 레즈비언에 대한 기사는 단 6.1%에 지나지 않았다. “레즈비언 보도 수치가 이렇게 낮게 나온 이유는 언론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가 레즈비언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인권정책팀은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레즈비언 보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선정성을 높이는 도구로 동성애를 사용하지 말 것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배제한 보도를 할 것 △인용을 사용할 때는 공정할 것 △동성애, 동성애자, 동성교제 등의 올바른 용어를 사용할 것 △차별을 은폐하거나 탈정치적인 보도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 등이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걸려 오는 상담 전화는 지치지 않고 울려대고 있고, 또 그 속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레즈비언과 관련된 ‘사건’들이 있는데도 언론에서 레즈비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현실의 레즈비언 이야기들이 보다 적절한 용어와 표현으로 그리고 보다 다양한 이슈로 다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희망일까. 진실로 내가 신문을 보다가 부들부들 떨며 신문을 찢고 싶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길 그리고 다음 해의 모니터 자료집에는 좋은 기사들만 채택하게 되길 바란다.
덧붙임

아자님과 나루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인권정책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