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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림의 인권이야기] 지역사회에 인권의 그물망을 촘촘히 짜볼까?

이주민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꿈꿔

서울 OO구 OO동에는 양말 공장이 많습니다. ‘공장’이라고 하기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양말 공장들은 대개 주택가 가정집 지하나 차고를 개조한 곳입니다. 이 작은 공장들에서 일하는 분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를 무릎 앞에 두고 양말을 끼우거나, 포장을 하거나, 양말을 분류하는 일을 쉼 없이 합니다. 아니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는 처지의 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필리핀에서 온 A씨는 그런 처지의 노동자입니다. 물론 뉴스에 종종 나오는 미등록이주노동자입니다.

OO동에 살고 있는 B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에는 하루 종일 아이를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전업 주부입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기저귀 값, 분유 값, 약 값이라도 보태고 싶지만, 딱히 아이를 맡길 데도 없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 일거리도 찾기 힘든 요즘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이와 함께하는 짧은 산책이 유일한 낙이지만 그마저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B씨도 뉴스에 종종 나오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이기 때문입니다.

A씨와 B씨 사이에서 태어난 세 살배기 C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는 이 병은 한국에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는 물론 그 자녀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병원비가 어마어마하게 드는 문제가 있습니다. 병원비 때문에 수술 엄두를 못 내던 C는 복지기관에서 연결해 준 공익재단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수술 결과도 좋아서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약을 복용하면 건강해 질 수 있다고 합니다.

1년에 두 세 차례 하는 검사와 약값이 만만치 않겠지만 A씨와 B씨는 C가 수술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생활하면 필리핀에 있는 첫째아이 양육비를 보내고, 둘째 C의 약값도 쓰고, 생활비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양말 공장 사장님이 뉴스에서처럼 월급을 미루거나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사장님이 아니라 다행이었고, 가끔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상의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의 휴대전화번호를 알고 있어서 든든했고, 고향 생각과 음식을 함께 나눌 커뮤니티의 동료들과 가족이 있어서 행복해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대회 모습(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대회 모습(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모든 복지체계에서 소외당하는 이주민

A씨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건 그로부터 1년 여 시간이 흐른 얼마 전이었습니다. C가 급성 편도선염으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 140만원이 없어서 가퇴원서약서를 쓰고 나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빠듯한 월급을 쪼개고 쪼개서 쓰는 A씨네 가족에 100만원 넘는 돈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가퇴원서약서에는 30일 내로 치료비를 갚지 않으면 월 10%의 이자를 부담해야 하며, 그 이후에 법적인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생명을 다루고 인도주의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병원에서 내놓은 서약서라고는 믿기지 않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기에 사회복지사와 함께 병원비 마련을 위해 애쓰고 있을 즈음,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집중단속 기간에 A씨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A씨는 부인과 아픈 아이를 남겨 둔 채 필리핀으로 강제 추방 되었습니다.
이 일은 지역사회에 이슈가 되어 함께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C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모금을 하기로 했습니다. 재활용품을 기증받아 판매한 수익금으로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소식을 접하고 C를 위한 바자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복지기관에서는 물건을 모아 기증하고, 활동가들과 사회복지사들은 물건을 정리하고 판매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양말 공장 사장님도 여러모로 후원해 주셨습니다. 동네 이웃들도 지갑을 열었습니다. 공공기관의 사회담당 공무원들도 개인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바자회는 성황리에 끝났고, 수익금과 후원금은 A씨네 가족에게 보내졌습니다. 얼굴을 대면하고 살아가는 지역에서는 이웃의 어려움을 알았을 때 서로 도우려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피부색이나 국적과는 상관없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더 나은 사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자녀라고 해서 보험혜택을 주지 않는 의료체계나, 내국인만 지원이 가능한 제도권 사회복지나,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구잡이로 연행해 가서 추방시키는 출입국관리사무소와 한국 정부의 행태는 모두 바뀌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의 몫이 커지는 현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역사회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눔과 복지를 넘어 인간으로서 차별받지 않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이주민 커뮤니티와도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면서 "OO다문화사랑축제" 같은 일회성 행사보다는 일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선한 마음은 가꾸고, 그런 마음이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 되도록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A씨네 가족 일을 계기로 OO구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 몇몇은 그런 활동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작은 걸음 시작한 게 다행입니다.

참, A씨는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입국해서 다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덧붙임

이창림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