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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영화를 만나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 ! 혹은 ?

<사랑의 정치(Politics of the Heart)>, 낸시 니콜(캐나다) 감독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동성애 비정상’ 발언

“남녀가 서로 결합하여 사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동성애 비정상’ 발언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그는 남/녀의 결합 혹은 결혼만을 ‘정상’이라는 것으로 범주화함으로써 그 외의 다른 모든 결합 혹은 결혼을 ‘비정상’이라는 범주로 몰아넣었다. ‘정상’만을 일반화하고 그 외의 ‘비정상’은 있으나마나 한 것 혹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관료주의적 행정의 속성이라고 했을 때 한 사회의 대통령으로 나서는 사람의 인식치고는 너무 천박하고 위험해보이기까지 하다. 정상/비정상의 구도 속에서 남/녀의 결합이라는 특정한 유형의 결합만을 정상으로 보고 권리를 인정하려고 하는 그의 태도에서, 그의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혹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보편적 인권이 아닌 ‘다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동성애자들이 결혼권과 양육권을 쟁취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사랑의 정치>의 한 장면

▲ 동성애자들이 결혼권과 양육권을 쟁취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사랑의 정치>의 한 장면


동성애를 정상적 인간 행위의 범주로 생각하지 않는 뿌리 깊은 관념은 이 전 시장에게서만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사랑의 정치>(Politics of the Heart)는 주목할 만한 영화다. 캐나다 퀘벡주의 동성애자들에게 역시 결혼은 요원한 이야기였고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는 것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2002년 그들은 끝내 이루어냈다. 영화는 캐나다 퀘벡주의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결혼과 양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적으로 결혼권과 양육권을 쟁취하였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결혼할 권리뿐만 아니라 그들이 아이를 낳거나 입양할 경우 이성애자 부부 및 그 아이들과 동등한 권리와 혜택을 보장 받았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겠지만, 그들은 유쾌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고 결국 동성애자들의 결혼권과 양육권을 인정한 법안은 주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이명박 전 시장과 함께 우리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한 남성 동성애자 커플이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진행하고 관련 행정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해 세간의 주목을 꽤 받긴 했지만, 결국 그들의 결혼은 가볍게 무시당했다. 또 지난 한 해 동안에는 동성애적 ‘코드’를 이용한 영화가 다수 나오고 일부는 흥행을 터뜨리긴 했지만, 극장에서는 동성애자들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관객들의 웃음과 야유가 쏟아졌다고 한다. 동성애 담론이 인권으로서 사회적으로 많이 회자되면서 동성애에 대해 “뭐 어때? 그들을 인정해줘야지”라며 ‘쿨’하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역시 ‘하지만 내 눈 앞에선 안돼’라고 생각하는 듯한 경향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가벼운 표현으로 포장된 무거운 호모포비아들

주위 사람들에게 동성애자들의 권리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면 그들은 ‘좋은’ 생각 혹은 ‘젊은이다운’ 생각을 한다며 나의 그런 관심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에게 퀴어영화제를 추천하면 참가하기를 꺼려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내가 퀴어영화제에 참가해서 몇 편의 영화를 봤다고 말하면 “도대체 거기에 왜 갔느냐”라는 질문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심지어 입으로 나에게 물어보는 이들이 많이 있다. 한 번의 질문에 그친 ‘가벼운’ 말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거기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쳐나가야 할 문제가 ‘무겁게’ 자리 잡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양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양육에 대해 ‘찬성’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동성애자들의 결혼에 찬성해온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동성애자들의 양육권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동성애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결혼을 해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된다면 그건 다른 문제가 되는 듯하다. ‘아빠와 엄마’만이 유일한 가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빠와 아빠’ 혹은 ‘엄마와 엄마’는 아이가 도저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모두 동성애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혹은 게이 ‘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는 남성성만을 배우고 레즈비언 ‘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는 여성성만을 배울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게 문제라는 걸까? 그렇다면 그들은 한부모 가정의 경우에도 역시 양육권을 인정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양육과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호모포비아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디에?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쉬운 점은 있다. 모든 동성애자 커플들이 결혼제도에 편입되고 아이를 낳으며 기르고 싶어하지는 않을텐데, 이 영화에서는 결혼과 양육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목소리는 담겨있지 않다. 또한 동성애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인권의 일진전이긴 하지만, 결혼제도는 여전히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사회장치 중의 하나라는 점을 이 영화는 간과하고 있다. 이성애적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통해 가정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장치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질서에 동성애자들이 편입된다고 해도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가부장적 결혼제도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오히려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편입되는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우려를 낳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레즈비언 커플들은 양육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 집중하는 반면, 게이 커플들은 결혼권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뉘는 것처럼 보였다면, 비약일까?

실제로 결혼에 성공한 게이 커플 중 한 명은 “결혼은 우리를 사회조직의 일부로 만들어줍니다”며 마치 결혼제도를 물신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또 결혼할 생각이 없는 비혼 동성애자/이성애자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과연 그들은 이 영화의 결론에 느낌표를 붙일 것인가, 물음표를 붙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