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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지의 인권이야기] 나, 트랜스젠더를 외치다

요즘 내게 별명 하나가 늘었습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곧잘 제게 “이보세요, 한사원님!”이라 놀리곤 합니다. 참 우스꽝스러운 별명인데도 난 이것이 썩 마음에 듭니다. 그렇게 높았던 ‘취업의 벽’을 성공적으로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남들과 같은 보수를 받고 4대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내 이름으로 된 명함이 나오는 그런 ‘직장’ 을 28년 만에 가지게 된 셈입니다. 수없는 시도와 좌절 끝에 일궈낸 지금이 어쩌면 감격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보고 연락을 기다리는 시간들은 초조하고 불안하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 과정은 결국 ‘나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알 수 없는 패배감으로 남아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나를 드러낼 수 없는 공간

이력서를 쓰며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라 말하지 못했습니다. 각종 언론과 공식석상 등에 얼굴을 드러내고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라고 무수히 말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만큼은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일인지 수없이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겨우 합격한 회사에서 ‘호적’이란 것 때문에 퇴짜 맞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이번에 잡은 기회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보통의’ 남성으로 대우받으며 남들처럼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찬 지금, 커밍아웃과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이 두려워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없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당당하게 드러내던 많은 것들에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됩니다.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것, 활동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창피한 일도 아닌데 숨겨야 할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공개했을 때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을 피하고 싶어서 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또 다른 거짓말이 나를 채워가기 시작합니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가 “나는 간성(Inter Sexual)입니다”가 되어버리고 그로인한 경험들을 포장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나는 새로이 형성되는 관계 속에서도 다시금 두려움을 안고 시작합니다. 비록 내게는 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충분히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기에 언제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은 결국 ‘발각’의 두려움과 부담을 함께 가져옵니다. 그렇다보니 오늘도 쓸데없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가 ‘FTM 트랜스젠더 활동가 한무지’라는 것을 아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저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잡아떼야 하나? 아니면 또 다른 자기전략을 세워야 할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고

‘성전환자성별변경관련법제정을위한 공동연대’에 합류를 하고,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의 발족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활동해온 지도 이제 1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자 했을 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도 없는 차별과 폭력의 지점들에서 받았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시기였고, 가뜩이나 ‘간성’이라는 자기전략을 이용해 직업학교에 다니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커밍아웃과 동시에 당했던 폭력과 일방적인 관계의 중단, 그 때마다 스스로를 원망했던 내 자신이 뒤죽박죽 엉켜버린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틀린 거니까, 내가 이상한 거니까, 내가 외계인인 거니까 이정도 쯤은 감수해야하고 원망할 건 나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을 주지시키며 살아왔습니다. 결국 차별이 차별인지 모르고, 폭력이 폭력인지 모르고 그것에 익숙해져 살아왔던 시간들에 대한 각성이랄까요. 그때서야 조금은 억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에겐 너무나도 쉽고 평범한 것들이 내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뭐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사실도, 그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나를 보는 시선들이 열이면 아홉은 왜곡되어 있다는 것도⋯⋯.

그렇게 수많은 고민과 혼돈의 끝에 시작한 활동이 이만큼의 시간을 가지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들이 흐르는 동안 그래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욕만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당사자를 대변하고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성전환자가 주제로 다뤄지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성전환자의 호적정정 하나도 뉴스에 날만큼 신기한 ‘꺼리’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뉴스에 나오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변화로 느껴집니다. 말로만 듣던 사람들을 직접 보고, 그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이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체감하면서 사람들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도 드러내보곤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드러내다보면 종래엔 그들에게도 그들과 ‘다름’이 그냥 별것 아닌 ‘다름’으로 받아 넘겨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를 외치다

사회가 많이 변했습니다. 하리수 씨가 5월에 결혼을 한다고 발표를 했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분위기. 이렇게 변한 사회가 현실이겠지요. 하지만 연이은 악플들과 저주들, 이 또한 현실입니다. 서서히 바뀌어가고는 있지만, 아직은 다 바뀌지 않은 사회를 바라보면 희망에 가득차기도, 또는 절망에 가득차기도 합니다.

아직은 다 되었다 말 할 수 없습니다. 아직 멀었다고도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상태이고, 그렇기 때문에 많이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또 튼튼해져가겠지요. 언젠가 한 번쯤은 명동거리 한복판에서 외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곧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 한무지. 트랜스젠더 한무지가 이 대한민국에 이렇게 당당하게 살고 있다!!”
덧붙임

한무지 님은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