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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의 인권이야기]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공부방

“여기, 불 왜 이렇게 켜 두는 거야? 늦게까지 이렇게 막 켜 놔서 되겠어?”
“아, 예, 복도 청소하느라고 켜 놨어요. 꺼야지요.”
“아, 얘길 하면 끄면 되지 무슨 말이 그래? 이거 누구 돈으로 다 내는 건데 그래. … 내 돈이 다 여기 들어가는 거야. 주민 돈을 이렇게 함부로 써도 되는 거야?”“아, 이거 저희가 내는 건데요. 전기료, 가스비, 수도세, 다 저희가 내고 있거든요.”
“무슨 소리야! 여기서 내면,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건데!”

우리는 지금 공부방을 두 곳 운영하고 있습니다. 먼저 공부방이 있던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몇 백 미터 떨어진 가까운 곳에서 공부방을 계속해 왔어요. 그 뒤 재개발된 동네에 임대아파트가 지어지고, 그 곳에 공부방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어, 지난해 그 안에 새로 공부방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터전에서, 교사들은 예전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주민들을 만나게 됩니다.

공부방에 찾아와 항의하는 주민들

가끔 공부방에 찾아와 버럭 화를 내며 항의(?)하는 분들이 있어요. 주로 “왜 이렇게 늦게까지 불을 켜 놓고 있느냐?”로 시작해,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은 몇 명인지,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지, 실무자들은 어디서 사는지, 아이들은 몇 명이며 뭘 가르치는지, 그러다 “쓸데없이 풍물은 왜 가르치느냐, 빨갱이 아니냐, 진정 내겠다.”는 영 엉뚱한 엄포까지…….

교사들은 물론 ‘빨갱이’가 아니고, 아이들을 제대로 만나자면 늦게까지 불을 켜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전기료를 비롯한 모든 운영비는 주민들 돈과 전혀 상관없이 후원금 등으로 꾸려 냅니다. 밤늦은 시각 찾아들어 한 시간씩 따져 묻고, 화를 내고 갈 만큼 걱정할 일은 없는 거지요.

몇몇 주민들이 이렇게 공부방을 내놓고 문제 삼은 건, 이 임대아파트 단지 안에 주민대표기구를 만든 뒤부터라 볼 수 있습니다.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올해 3월 입주 2년여 만에 ‘임차인대표회의’를 만들었지요. 이 기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부방도 할 수 있는 역할로 도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방을 마뜩찮아 하는 소리들은 실상 주민대표들을 못마땅해 하는 말들에서 튄 불똥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민대표들이 일해 온 지난 일 년 안 되는 기간 동안, 동네에는 대표들에 대해 헐뜯는 말들, 돈과 관련된 소문들이 줄곧 나돌고, 추석을 앞둔 반상회에서는 급기야 눈에 보이는 싸움까지 일어났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분파가 생기고, 보이게 보이지 않게 그 싸움은 계속 되고 있지요.

주민들간의 싸움에 힘이 빠지고

하지만 교사들이 보기에 그 싸움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주민대표들에 대한 문제제기들도 알고 보니 따질 만한 일이 아니거나 이미 전혀 근거 없는 일로 밝혀지기도 한 것들이었습니다. 주민대표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주민들은 문제제기를 하다가도 더 따지고 들 것이 없는 답변이 돌아오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외면하고 다른 문제를 꺼내 들지요. 억지가 논리를 먹고, 목소리가 대화를 막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임대아파트단지들의 분위기도 우리 동네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 일을 막고 서는 사람들, 일을 하려는 사람들과 그 반대편에서 일을 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모양새든, 짧게 말해 ‘자리 다툼’이요, ‘이권 다툼’인 것이지요. 좋은 뜻을 가지고 일어섰던 사람들도 이런 싸움에 휘말려 힘을 쓰다 보면 맥이 풀리고 의욕이 사그라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공부방 교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하며, 그 부모들과 지역 주민들이 자기 권리를 찾아가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는 상대인 주민들에게서 도리어 때때로 이해하기 힘든 질책을 받습니다. 또 날마다 책잡히지 않기 위해 새어나가는 말소리 한 마디, 불빛 한 줄기,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하며 긴장 속에 살아가지요. 이같은 우리의 처지를 느끼며, 또 동네 돌아가는 형편들을 보며, 공부방 교사들은 요즘 솔직히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우리가 편들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에, 심지어 ‘우리,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싶은 생각이 불쑥 떠오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희망을 만들어가기 위해 가난한 이들과 지금, 이 곳에서

하지만 다른 한편 곰곰이 돌아보자니, 우리 동네의 모습이 그다지 새삼스러운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바로 돈이 최고의 가치인 ‘이권 다툼의 시대’니 말입니다. 열심히 일해도 갈수록 가난해지는 ‘불의한 시대’니까요. 이 삭막하고 의롭지 못한 시대를 건너오며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받아온 이들이 바로 가난한 민중들일 텐데요.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불의에 저항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모습을 닮아가고,…. 이들이 모두 우리가 함께 살아갈 주민들이지요.

공부방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착하고 정의로운 이들이어서? 그건 아닐 거예요. 우리 시대 가난한 이들은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힘이 없기에 부당하게 불행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 불의를 넘어서기 위해, 누구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함께 행복한 세상을 지금 여기서부터 만들어 나가기 위해 어깨 겯고 가고자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곧 희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일구어 가야 하겠지요.<출처; www.greatwar.nl>

▲ 가난한 사람들이 곧 희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일구어 가야 하겠지요.<출처; www.greatwar.nl>



가난한 사람들이 곧 희망은 아닐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일구어 가야 하는 것일 테지요. 그런데 그 희망은 마침내 ‘참 가난’한 데 있을 것이라 믿어요. 빼앗긴 데서 온 가난, 결핍된 가난을 넘어설 수 있을 때, 그리하여 몸도 마음도 영혼도 자유로이 스스로 가난해질 수 있을 때, 우리는 다같이 착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엄연한 현실에 막막해하다 어느새 훌쩍 꿈같은 이상을 그리는 것 같아 머쓱해지지만, 전 그 힘으로 다시 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임

이미나 님은 교육공동체 두리하나 실무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