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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척이다] 활동비, 프로젝트 사업,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어느 활동가들의 대화

가 : 활동비에 얽매이는 활동은 활동비를 위해서 자신과 타협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으로부터 활동비를 받지 않아야 해.
나 : 활동가들의 활동비를 벌기 위해서 조직이 재정사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 활동가들이 자유로운 활동보다는 재정사업에 얽매이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활동비가 있어서는 안 돼. 활동비 없는 활동가가 개인적인 수입을 위해 시간이 별로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수입도 괜찮은 과외 수업을 아르바이트로 많이 하지. 그런데 과외를 하려면 ‘일류대학’을 나와야 하잖아.
다 : 그렇다면 ‘일류대학’ 출신이 아닌 활동가는 활동할 수 없는 거야?
가 :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을 하는 활동가가 아르바이트로 과외 수업을 하는데, 사실 과외는 사교육의 병폐를 부추기는 꼴이니 이 문제는 어떻게 하지?

아르바이트는 꿈도 꿀 수 없는 장애인 활동가

여성장애인으로서 활동가가 된다고 하는 것<출처; www.disabledartistsnetwork.net>

▲ 여성장애인으로서 활동가가 된다고 하는 것<출처; www.disabledartistsnetwork.net>

하지만 활동가들의 이런 고민을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었다. 이러한 고민은 철저하게 비장애인 중심적 활동에서 나오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장애인 활동가들이 자기 활동 외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짧은 시간을 들이고도 비교적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과외는 적지 않은 활동가들의 생계 수단이 되고 있지만, 사교육 병폐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과외가 장애인 활동가들의 생계 수단으로 고민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일류대학을 나와야 유리하게 할 수 있는 과외를 대부분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장애인 활동가들은 꿈도 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애인 활동가들은 현실적으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적 비전을 갖고 ‘활동가’라는 삶을 선택한다기 보다는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활동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스스로 활동가로서의 자존감이 약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고민한다. 또한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장애인 활동가들이 생계수단으로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가 전문적인 일이 아닌 이상 짧은 시간 안에 해야 하는 일이고 거의 몸으로 하는 일들인데,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기 장애에 맞는 일을 찾기도 어렵다.

물론 활동가로 산다는 것 역시 장애가 고려되면서 몸에 맞는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활동가는 마치 ‘전천후 기계’처럼 많은 것들을 잘 해내야 한다. 사업 진행도 잘 해야 하고 전략도 잘 기획해야 하며 섭외뿐만 아니라 조직도 해야 한다. 또 재정도 마련해야 하고 성명서도 쓰며 때에 따라 선동도 해야 한다. 성실성, 적극성, 진실됨, 전화 받기, 팩스 보내기, 상담하기, 차별에 민감하기 등 많고 많은데, 역할 분담을 공평하게 잘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만도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고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체력적으로도 힘겨운 일이다. 나는 저녁이 되면 하루 동안의 활동 에너지가 다 소진되는 것을 느낀다. 물론 비교 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난 다른 사람들보다 한 두 시간 전에 일찍 일어나고 또 늦게 자야만이 끝내야 할 일을 다 할 수 있다. 반면에 어떤 비장애인 여성활동가는 오전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오후에 집회에 나가고 성명서를 쓰고, 밤엔 동지들과 정보 교류를 위해 술을 마시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것을 보며 놀라곤 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도 있고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에 한 두 가지만 할 수 있는 나의 신체적 조건으로는 아르바이트까지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프로젝트 사업이라도...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때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출처; www.mindfully.org>

▲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때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출처; www.mindfully.org>

장애인 활동가들의 이러한 상황 때문에 활동을 하면서 활동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장애운동 대중사업을 위해서 매년 사업기획을 하지만, 작고 기반이 약한 조직은 재정적 지원을 받는 여러 프로젝트 사업들을 기획·응모하더라도 대부분의 프로젝트 사업은 인건비가 책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 마련을 위해 또 고심하게 된다. 프로젝트 사업을 한다고 활동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업을 진행하면서 홍보가 되고 후원자들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외 부수적인 재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프로젝트 사업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프로젝트 사업은...

그러나 프로젝트 사업만 진행하다보면, 사업의 행정업무와 프로그램에 매몰되어 활동가로서 해야 할 정세적인 대응이 안 되거나 운동에 대한 안목도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어느새 서비스 전달자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보며 ‘내가 과연 활동가인가?’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래도 여전히 장애를 가진 활동가들은 감히 아르바이트는 생각도 못하면서 활동비도 받지 못하고 빈곤한 상태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생각의 꼬리가 길어 문을 닫을 수 없는 것처럼 길게 길게 길어진다. 이 생각들이 끝이 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음에 기회가 되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리를 해보고 싶다. 어떻게 장애인 활동가들이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을 지 나도 알고 싶다. 진심으로.
덧붙임

박김영희 님은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