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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나의 인권이야기] 남부 휩쓴 연속 정전사태, 그리고 한미 FTA

얼마 전 부산지역 대산석유화학 단지에서는 대형 정전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는 지난 1일 제주도의 대규모 정전사태로 이어졌고, 다시 여수 석유화학공장에서도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한전 측에서는 이러한 연속 정전사태가 전남 해남과 제주도를 연결하는 해저송전케이블 시스템 고장 탓이라고 발표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24일 한전 사장이 나서서 사과문을 발표할 만큼 심각했던 이번 정전사태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에너지 산업 사유화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누이 경고돼 왔다. 전력이 생산되어 일반 가정에 공급되기 위해서는 발전-송변전-배전이라는 시스템을 거친다. 발전소에서는 전력을 생산하고, 송변전은 생산된 전기의 전압을 바꾸어 지역으로 송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당 지역과 가정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배전 시스템에서 담당한다. 과거에는 이 시스템이 통합적이었다. 그런데 99년 정부가 전력산업 사유화를 촉진하기 위해 분할매각 방식을 취하면서, 통합되었던 업무를 세 단위로 쪼개어 버렸다. 이로써 통합되고 안정적이었던 전력공급 시스템은 발전 5개사와 원자력의 분할·분사, 그리고 송변전과 배전이 남은 현재의 한전 체제로 전환됐다.

신자유주의는 언제나 효율성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사유화를 추진하고 사유화를 위해 쪼개어 놓고 경쟁을 시킨다. 하지만, 지역 독점적 성격을 지닌 네트워크 산업에서 경쟁이 불가하다는 사실은 이미 영국과 호주 등 비슷한 방식의 사유화 정책을 택한 나라의 경험으로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캘리포니아 정전사태 등 엄청난 대재앙을 겪고서야 엄청난 국가 재정을 들어부어 재국유화의 길로 들어선, 어리석은 전철을 우리는 알면서도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전력 생산 시스템은 발전-송변전-배전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를 가져야만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그러나 사유화, 즉 오로지 팔기 쉽게 쪼개 놓은 시스템은 그 전에 유지되던 통합적 시스템에서 존재하던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업무 연계를 무참히 깨고, 서로 간 경쟁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구조는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국가기간산업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한 순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말았다. 고장이 나고 비상사태가 생기더라도 통합적 대응은 이제 사라졌다.

더욱이 책임공방 사태는 더더욱 큰 불행을 초래한다. 발전-송변전-배전 체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장사태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고장의 원인 자체가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에 책임 자체가 공동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나면 손해배상 소송과 책임공방에 따르는 후과를 두려워하여, 사고 자체를 먼저 수습하기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가장 중요한 유지 보수의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전회사를 보면 계획예방정비라는 것이 있다. 2-3년에 한 번씩 기계를 다 뜯어보고 고치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생산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발전회사를 5개로 쪼개 놓고 5개간 경쟁을 하라고 하니 이 일이 어찌 되겠는가? 발전 산업처럼 80%가 연료비인 산업에서 결국 경쟁 자체도 허구적이지만, 그나마 공기업 경영평가라는 또 다른 허구적 장치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고, 운영비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유지 보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공공부문을 집중적으로 쥐어짜온 7-8년을 버티는 동안, 기계는 썩어나갔고 노동자들은 지쳐나갔다. 이렇듯 대규모 정전 사태, 향후에도 일어날 블랙 다운의 재앙은 전력산업 사유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한 복판 안에서 이미 시작되어 있었던 재앙이었다.

금번의 잇따른 사태는 해당 지역 주민만의 일로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나 향후 전력산업, 나아가 에너지산업 전반의 사유화 정책이 지속되는 한 금번의 사태는 일파만파의 사태, 즉 재앙으로 불거질 수 있음을 감히 확언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사유화 정책이 중단된 상황임에도 상황은 이렇듯 심각하게 번지고 있다.

에너지 기본권, 전력산업의 공공성은 이토록 심각하게 후퇴되고 있다. 이제 에너지 기본권은 여타의 인권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한다. 에너지의 사회공공성을 확보하는 일은 국가기간산업의 민주적 운영, 기간산업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뿐 아니라 에너지를 삶의 필수재로 향유하는 전 국민의 에너지 이용권과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에너지 사유화 저지 투쟁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인권투쟁이 되어야 한다.

최근 한미 FTA 저지 투쟁에 불이 붙고 있다. 물, 공기, 식량, 에너지 등 한미 FTA는 살아가는 데 너무도 소중한 것, 그리하여 너무나 당연하게 내 곁에 있었던 것들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한미 FTA 저지 과정에서 에너지뿐 아니라 여타의 투쟁 과제가 적극적인 인권의 문제로 제기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임

송유나 님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