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베트남 파병, 2003년 이라크 파병에 이어 2026년 호르무즈 파병 논쟁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해외파병 결정들은 한국이 국제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선택해온 역사다. 만약 우리 스스로를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피해자라고 여겨왔다면, 이번 호르무즈 파병 문제는 한국이 전쟁을 통해 국제질서의 행위자로 역할해왔음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누구와 무엇을 거래하며 그 자리를 선택해왔는가. 그 거래들이 만든 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전쟁으로 시작한 한국의 국제질서 개입
한국의 해외파병 역사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에서 시작됐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미국의 인정과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반공’을 내세우고,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시키는 게 매우 중요했다. 결국 안보와 경제개발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에게 베트남 파병은 한미동맹의 강화와 경제적 지원을 동시에 손에 쥐기 위한 구상이었다. 미국에게 먼저 베트남전 파병을 적극 제안했고, 결국 연인원 32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파병과 함께 잔혹한 학살과 침략을 자행했다. 한국의 파병으로 미국은 아시아 국가의 참전이라는 명분도 챙기며, 전쟁을 지속할 수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다. 전후 초강대국 미국에게 첫 패배를 안긴 전쟁이었다. 베트남전 패배로 미국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자주 국방과 미군 개입 축소를 골자로 한 닉슨 독트린 이후 미국은 주한미군 2만 명을 철수시킨다. 하지만 전쟁에서 벌어들인 돈은 박정희 정권에게 고스란히 남았다. 파병의 대가로 받은 용병 수당과 1억5천만 달러의 차관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과 일부 기업의 급속한 성장을 뒷받침했다. 베트남전 특수는 박정희 정권이 장기집권하는 밑거름 중 하나가 됐다. 베트남 파병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10여 년간 이어지는 내내 한국과 베트남 곳곳에 전쟁의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파병, 침략전쟁은 오직 경제성장이라는 국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됐고, 그 대가를 치른 사람들의 삶은 지워졌다.
미국의 안보·경제 질서와 긴밀히 얽힌 한국 정부와 자본
2003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고민하자, 전국적으로 반전 운동 및 파병 반대 운동이 펼쳐졌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법 모두가 침략전쟁을 금지하고 있으며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인 미국을 규탄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타올랐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해야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히며 ‘명분과 현실’ 사이의 고뇌 끝에 불가피한 선택을 한다면서 파병을 결정했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한국은 그 압박을 받는 피해자라는 ‘어쩔 수 없는’ 안보 환경 속에서 그래도 끝까지 고뇌하며 최대한 ‘덜’ 파병하고 ‘더’ 국익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서사. 어쩐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그간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의 유지와 한반도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의 파병 요구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처지로 자신을 변명해왔다. 최근 미국의 대미투자요구에 대해서도, 한국이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빼앗기고 있다는 인식이 흐른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결코 수동적 위치에 놓여 있지 않다. 반도체, 조선업, 에너지 등 각종 대미투자산업 목록이 보여주듯, 이미 한국 정부와 기업은 미국의 경제·안보 질서에 깊숙이 엮여 있다. 미국이 AI 산업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중국의 부상에 맞서 국제적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에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주요 생산기지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핵산업 역시 최근 원전 8기 건설 대미 투자, 핵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권리 요구 등에서 드러나듯 한미 간의 공동의 에너지, 안보 이슈이다. 한국 조선업은 미국에게 먼저 ‘마스가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군함을 비롯한 미국 조선업 재건의 핵심 투자 주체가 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미 한반도를 넘어, 국제적 전쟁 질서에 올라타 경제적 이익과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K-방산을 미래 전략산업이라고 치켜세우며 2030년까지 세계 4대 방산강국 진입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중동의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이 무장을 강화할수록 한국에 돈이 쌓일 것을 기대하는 이해관계가 구축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높아질수록 한국의 ‘국익’에 도움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명백히 한국은 미국에 휘둘리기만 하는 안타까운 나라가 아니다. 전쟁의 기운을 타고 이익을 협상하는 적극적 행위자다.
전쟁종식을 잊은 채 평화와 기여를 입에 담는 대통령
호르무즈 파병 문제는 바로 이러한 구조 속에서 불거진 사안이다. 한미 간 협상 테이블에는 파병과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핵잠수함, 우라늄 농축·재처리, 조선업과 대미투자 문제 등이 함께 올라온다. 어딜 봐도 한국 정부가 힘없이 끌려들어가는 자리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그저 곤란한 태도를 표면에 드러내고 있을 뿐, 한국의 대자본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협상의 과정으로서 전쟁을 다루고 있다. 지난 9월 22일 유엔총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포용적/안정적/책임 있는 평화공존’의 한반도 평화의 3대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여 장기적으로 ‘핵 없는 한반도’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경제와 안보, 국익과 현실을 내세워 파병이든 무기 장사든 전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끊임없이 침략전쟁에 연루되길 또다시 선택하고 있는 이상, 한국 정부는 평화공존의 페이스메이커가 결코 될 수 없다.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전쟁에 관여하거나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미국의 요청 자체를 거절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국민 보호와 국익을 위한 ‘실질적 기여 방안’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논의하고 있으며, 청해부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얼마 뒤 유엔총회에서는 호르무즈와 홍해의 해상 봉쇄가 에너지와 물류를 무기화한다고 지적하면서 ‘건설적 기여국 연대’를 제안했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말과 전쟁에 기여한다는 말 사이에서, 도대체 한국 정부가 하겠다는 기여는 무엇인가. 누구의 전쟁에,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기여하는 것인가. 전쟁에서 정부와 기업이 새로운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살피며 전쟁은 지속된다. 이토록 명분도 없는 잔혹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기여할 방도를 모색하는 이는, 한국 정부 어디에도 없다.
전쟁을 끝내야 할 책임
각자도생의 국제질서를 운운하며 어쩔 수 없다는 기만적 태도로 침략전쟁의 본질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가 부끄럽다. 한국의 정부와 기업이 무기를 팔고 파병을 셈하면서 전쟁이 계속되는 국제질서의 일부를 채워내는 동안, 타인의 일상과 목숨을 대가로 얻는 이익을 국익이라 부르는 순간마다, 부끄러움이 쌓여간다. 국가의 이름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결정들이 곧 국익이라 칭해지는 지금,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의 구조 안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에 기여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정부가 아니라, 전쟁을 지속시키는 구조를 멈추기 위한 정치와 투쟁을 조직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는 전쟁과 적대의 국제질서 속의 적극적 행위자인 한국정부와 자본을 멈춰세워야 하는 우리의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