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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삶과 노동을 잇는

선지현 님을 만났어요

새해 벽두부터 집단해고를 겪었던 한국GM 부품물류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얼마 전 승리했다! 예! 승리 보고대회가 있던 어느 겨울 밤, ‘GM부품물류투쟁승리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선지현 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체제전환운동을 생각할 때 줄곧 떠올리는 어느 멋진 활동가이기도 한, 지현 님과의 대화를 열심히 정리해봤습니다. 함께 읽어봐요!

 

요즘 선지현 님을 소개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교육, 연결, 노동. 저는 조각나 있는 노동의 문제를 ‘삶의 권리’로 연결하고 구성해보려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문제는 되게 다양한데, 이것들을 노동과 연결해서 생각하고 조금 다른 실천을 모색해보는 거죠. 이러한 교안을 만들고 교육 활동도 하고요. 예를 들면 노동 주도의 정의로운 전환, 일터에서의 성평등, 불안정 노동의 권리 재구성을 중요하게 공부하고 교육해요. 실천 활동으로는 불안정 노동자들의 싸움, 그리고 녹색 단협 운동과 같은 노동 주도의 산업 전환에 대한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제가 동료들과 함께 만든 ‘삶과 노동을 잇는 배움터 이짓’(이하 이짓)의 모토와 활동 내용이기도 해요.

 

‘이짓’에 대해 좀더 궁금해지네요. ‘이짓’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노동운동이 삶과 세상을 바꾸는 운동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짓’을 만들게 됐어요. 노동의 권리를 ‘삶의 권리’로 좀 더 넓게 확장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좀 더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한 필요성이나 시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노조 중심의 조직운동을 바깥으로 꺼내놓고픈 마음인 거죠. 예를 들면 ‘공공성’을 얘기할 때, 자기 일터에 영향을 미칠 때만 공공성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공공성을 서로 연결해서 함께 싸워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있어요. 지수 님이 활동했던 주거권 운동을 예로 들면, 주거권이 노동자들의 운동에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연결은 잘 만들어지지 않죠. 그렇다면 자기 공장, 자기 일터를 넘어 ‘지역’을 바탕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여기’에서 살아가는 데에 노동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차별에 저항할 권리도 필요하고, 안전한 곳에서 주거할 권리도 필요하잖아요. 이렇게 ‘삶의 권리’로 노동운동의 시야가 더 넓어지면 좋겠다는 상을 그려보게 됐어요.

 

‘이짓’에서 최근 주력했던 투쟁 현장이기도 했지요. 한국GM 부품물류 하청노동자 투쟁! 최근 승리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축하드립니다, 투쟁! 이 싸움을 잘 모르는 후원인들에게 설명을 부탁드려 봅니다.

지난 해 말,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가 됐어요. 이 노동자들은 20여 년 동안 불법파견으로 착취를 당해왔어요. 하지만 비정규 노동자가 노조하면 해고당한다는 두려움에 저항도 못했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이르러 노조를 결성하게 된 거죠. 그랬더니 한국GM에서 노조를 와해하려고 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한 거예요. 일단 해고 시켜서 노조를 깨고, 그 다음에 노동자를 개별적으로 채용해 불법파견 논란을 없애려는 거였죠. 세종 부품물류센터를 각자 떠나게 한 뒤, 인천부평에 있는 생산 공장으로 이주시키는 전략을 취한 거예요. 자본이 20년 동안 계속 취해온 방식이기도 해요. 비정규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조를 만들어서 삶을 바꿀 권리를 봉쇄시켜왔던 거죠. 사실 이 때문에 노조법 2조 개정운동을 펼쳤던 거거든요. 그 결과로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었고 올해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법 개정 취지를 전면 부정하는 일이 한국GM 부품물류센터에서 벌어진 거예요.

 

‘이짓’이 특히 이 투쟁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한국GM 부품물류 하청노동자들은 자본의 발탁 채용을 거부했어요. ‘우리는 우리가 일해 온 이곳을 안전한 일터로 만들며 살고 싶어’, ‘여기를 떠나고 싶지 않아’ 라면서, 살던 곳에서 노동의 권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하면서요. 이것이 제가 이 싸움을 함께 하게 된 결정적 계기이기도 해요. ‘내가 어디에 살든 어떤 일을 하든 차별받지 않고 안정된 삶을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내가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이런 마음이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을 하면서 썼던 저희의 구호에 ‘삶의 권리’가 있는데, 일터도 지키지만 동료도 지키고 나의 삶터도 지키겠다는 의미예요. 특히 청년 노동자들이 20년 일한 자신의 선배들과 같이 싸워서 같이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게 큰 울림을 줬죠.

 

지난 해 12월에 열렸던 ‘12.10 민중의 행진’에서 ‘찢겨진 노란봉투법’ 메시지 작성에 동참했던 기억이 나네요.

노조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개정된 노조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 쫓겨나게 된 상황에서, 이를 용인한다면 도대체 개정된 노조법이 무슨 소용이냐고 본 거죠. 개정된 노조법이 현장에 제대로 안착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쓸모없는 쓰레기가 될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바로 한국GM 부품물류 노동자들의 투쟁이라고 얘기하면서 이슈화를 시도했던 거예요. 노조법 2조 자체가 비정규 노동자들의 20년 투쟁으로 만들어진 건데. 이 법이 존재하고 또 조만간 시행될 건데도 여전히 하청노동자들이 20년 전과 똑같이 노조를 했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시대라는 걸 화두로 삼았고, 그래서 이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크게 외쳤죠.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세종물류센터 사수투쟁을 했다는 얘기를 보았는데, 공장을 사수하는 건 왜 중요했던 거예요?

하청노동자들이 법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건 어려움이 많아요. 게다가 이미 해고가 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 우선 일터를 지키면서 싸움을 하는 거예요. 본사에서 계속 공장에 있던 부품 물량을 빼돌리려 시도했어요. 무슨 의미냐면, 부품물류 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빼돌려서 다른 곳에서 하려고 한 거예요. 우린 이걸 막은 거죠. 아침마다 공장 곳곳에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을 배치해서요.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예요. 우리가 쫓겨나지 않고 다시 돌아가려면 이 물량이 바깥으로 나가서 빼돌려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하루에도 2~3번씩 그런 시도가 있었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달려가서 소리 지르는 거예요. 사실 이런 건 조합원들보다 저 같은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게 나아요. 노동자 입장에서 정말 눈 돌아가는 일이거든요.

 

그럼 매일 사수투쟁도 하고, 세종-서울-부평 투쟁도 한 거예요? ‘승리의 골든타임’ 때문인가요?

거의 일주일에 2~3번 상경 투쟁들이 있었어요. 진짜 조합원들이 고생 많이 했죠. 그렇지만 이렇게 짧게 몰아쳐서 싸움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노동자 조합원 96명이 함께 싸울 때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노동자들 다 떨어져 나가고 그냥 법의 판결만 남기 전에 우리 스스로의 투쟁으로 현재의 조건을 바꿔 내보자 싶었던 거예요. 서로의 결의가 있고 에너지가 있을 때, 노동자들끼리 싸우다가 지치고 힘들어하고 그래서 소수가 남아 외길에 서게 되어 정말 외롭다 싶을 때 연대자들이 모이게 되곤 하는데요. 이제 이렇게까지 두지 말자고 한 거죠. 노동자들이 정말로 싸움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높을 때 동지들이 연대를 함께하면 이길 수 있다고요. ‘승리의 골든타임’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건, 이들의 의지가 충천할 때 그래서 곳곳을 누비며 싸움을 벌일 때 동지들이 함께 연대해주며 결국 승리하게 하자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이겼네요. 오늘 오후에 투쟁 승리 보고대회가 있으셨다고 하셨지요.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이 투쟁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투쟁에 전략과 조직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당하기 때문에 버티면 이긴다는 것 말고요. 우리가 자본의 약점을 노리고 파고들고, 거기에 균열을 내서 자본이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어떤 힘의 집중과 전략을 잘 구사해야죠. 이번 투쟁 전략 중 하나가 공장 사수투쟁이에요. 부품물류센터의 주요 역할인 부품 공급을 중단시킨 건데, 실제로 자본이 압박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물량을 막아냈어요. 또 하나는 노동부 압박이었고, 세 번째로는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은 점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널리 많은 단위에게 알려지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다음으로, 저는 하청노동자나 비정규 노동자들이 싸움을 할 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같은 일터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계급적 태도와 연대적 태도고, 또 하나는 지역에 기반한 사회운동의 연대 전선이에요. 이 두 가지를 갖고 있으면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들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이번 투쟁이 그랬어요. 정규직 노조가 투쟁을 공개 지지하고 자본을 향해 엄포를 놓는 계급적 태도를 보여주었고, 지역의 노조와 정당과 사회운동들이 이 싸움을 정말 함께 해냈어요.

 

이 투쟁이 ‘지역에서의 체제전환’에 대한 고민과 실천과도 연결된다고 느껴져요.

제게 지역에서의 체제전환운동은 ‘내가 어디에 살든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실현하는 운동’이에요. ‘어디에 살든’이라는 표현이 특히 중요한데, 내가 사는 곳과 일터에서 존엄하게 살 권리를 현실화하는 거죠. 구체적인 지역부정의에 맞서는 지역정의운동을 통해서요. 이런 과정을 통해 체제전환운동이 공중에 뜬 듯 한 느낌을 넘어서 현실에 좀 더 뿌리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제게는 지역에서의 체제전환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지현님이 함께 만든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도 너무 중요한 네트워크라고 느껴져요. 간단히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는 지역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자발적으로 오가며 관계 맺는 네트워크예요. 저는 일상 공간에서 만나는 이들과의 접점을 어떻게 더 넓힐 거냐 하는 고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는 다양하고 크고 작은 모임들이 되게 많이 만들어지는 게 필요한데요. 우리는 그런 작은 모임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자기 대중을 어디선가 멀리서 찾게 돼요. 맨날 운동하는 사람들만 만나면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얘기하는 꼴이 되고요. 그렇지 않은 일상을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 그러면서 나의 운동을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품 내어주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를 공부모임이든 영화보기든 다양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여러 접점이 생겨나야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우리도 쭉 펼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현님이 ‘이짓’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면서 동시에 ‘걔네’ 활동도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영감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가까이 만나는 사람들과는 가까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내면서, 조금 멀리 있는 사람들과도 연결되는 건데요. 저도 이런저런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여러 방식을 시도해봐야겠죠.

 

마지막으로 지현 님에게 사랑방은 어떤 곳이고, 2026년의 사랑방에게는 무엇을 기대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주로 만나는 몇몇 사랑방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떠올려보면, 사랑방은 지금 한국사회에 어떤 운동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바로 그 운동을 펼치는 사람들, 그 시대에 어떤 운동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해 답하려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시대마다 사회운동이 요구받는 사회운동의 자리를 만드는, 사회운동의 어떤 역할을 여는 고민을 하는 단위인 거죠. 지역에도 이런 운동체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네요.

2026년에도 사랑방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꾸준히 잘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마 사랑방은 2026년에 평등의 전선을 일구는 운동을 하게 되지 않을런지요? 체제전환운동을 이야기하면서 ‘가자, 평등으로!’ 구호를 외쳤잖아요, 그러면 지금 우리는 그 평등의 전선을 만들 사람들이 필요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