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명에 ‘사랑’이 들어있으나 사랑이란 말이 딱 붙지 않는 사랑방인데요. 이런 사랑방과 운명처럼 만나 자원활동을 하면서 사랑의 언어를 넓혀가는 중이라고 2015년 소식지에 이야기를 나누어줬던 버들 님을 10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라 자신을 소개했던 버들 님은 지금도 사랑의 에너지가 가득했네요. 일 마치고 늦은 저녁에 만나 사무실 부엌에서 밥 먹으며 늦도록 수다를 떨었는데요,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어색함은 금세 사라지고, 반가움과 그리움 사이의 시간을 함께 보냈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관계의 노동을 지향하는 정기청소전문업체를 운영 중이에요. 사랑방 자원활동을 할 때 ‘버들’이라는 이름으로 만났으니 버들이라 불러주세요.
후원인 명단에는 다른 이름이라 몰랐네요. 사랑방 후원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던 건가요?
예전부터 사랑방은 돈 벌면 꼭 후원해야지 했던 단체 중 1순위였어요. 일하다 그만두고 창업을 시도한 게 안 풀리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지나 4년 전쯤에 후원 신청을 했네요.
지난 9월 중순이었죠. 갑자기 사무실로 전화 주고 찾아와 반갑기도 했지만 놀랐거든요. 그날 일정 때문에 찰나같이 있다가 갔는데, 어떤 발걸음이었을까 궁금했어요.
청소 일은 주로 새벽에 하고, 평일 낮에는 다른 일을 했었거든요. 제가 맛집 찾는 것을 좋아해서 지도를 정말 구석구석 샅샅이 보는 취미(?)가 있어요. 주변에 어떤 곳들이 있나 확대하면서 지도를 보고 있는데 ‘인권운동사랑방’이 딱 뜨는 거예요. 자원활동할 때 오갔던 사무실은 홍대였어서 언제 이쪽으로 이사를 오게 됐지 궁금해하며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주소가 여기로 되어있더라고요. 지도에서 발견한 그때부터 언젠가 들러야지 생각했었는데, 이제 다른 동네로 옮기게 되면서 그날 드디어 실행했던 거였어요. ㅎㅎ
청소업체를 운영한다고 했잖아요. 명함 준 것에 적힌 SNS 들어가보고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떻게 청소사업을 하게 된 건가요?
좋아하는 것을 저의 방식으로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제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먼저 아이스크림을 시도하려고 했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지인 통해 청소일을 하게 됐는데, 처음 청소했던 곳이 정말 빡셌거든요. 같이 일한 분들이 다들 짬이 있는 남자분들이었는데, 그 사이에서 제가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들었어요. 우선 부딪혀보자 했던 건데, 청소도 요령이 있어야 하거든요. 단계별로 착착 일을 나누어 하는데, 저에게도 다들 어떻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어서 배우면서 했어요. 정말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 너무 개운하고 뿌듯한 거예요. 같이 한 분들과 이 힘든 걸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이런 끈끈함도 생기고요.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청소업체를 운영하게 됐어요. 저희가 정기청소를 맡아 하는 곳들이 병원, 회사, 학원, 교회 이런 곳들이거든요. 사람들 없을 때 청소해서 이른 아침에는 끝내야 하니 새벽에 움직여야 하잖아요. 아직 해 뜨기 전 어둑하고 고요한 시간에 몸을 움직여 땀 흘리고 해 뜰 때쯤 딱 끝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버들 님만의 청소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저희에게 정기청소를 맡긴 거래처들의 소개로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이어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일을 무작정 받지는 않아요. 의뢰가 오면 견적을 보러 가는데 일을 맡기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그곳이 어떤 공간인지를 살피게 되어요. 어느 종친회에서 운영하는 건물을 임시로 맡아 청소하게 됐는데, 40년쯤 된 낡은 건물이거든요. 건물이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그 건물을 청소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최근 수술을 하시게 되었대요. 그때 거래처의 요청으로 대신 건물 청소를 맡게 된 건데, 수술 후 회복 기간이 길어졌는데도 회복하실 때까지 계속 기다리시더라고요. 사람 구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 청소인데, 이곳은 공간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청소를 통해 공간을 가꾸어가려는 이들과 관계를 맺고, 그 공간을 가꾸어가는 데 동참한다고 생각해요. 청소를 주로 물리적인 의미로 연상하게 되는데, 저에게는 관계의 노동인 것 같아요. 일을 맡기는 이들과도 그렇고, 같이 일을 하는 이들과도 그렇고요.
10년 전과 지금의 사랑방을 볼 때 여전한 것, 달라진 것, 바라는 것 이런 게 있을까요?
문득문득 생각나고 궁금했지만 사랑방 소식을 꼼꼼히 챙겨보지는 못해서 여전한 것이나 달라진 것은 얘기하기 어려울 것 같고, 바라는 것은 있어요. 자원활동가 모임이 중단됐다고 하니 제가 괜히 아쉽네요. 자원활동으로 사랑방을 만날 수 있었고, 그때 서울시청 무지개농성에 함께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친구가 됐던 기억이 소중하게 있어요. 사랑방이라는 이름처럼 누구나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방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랑방을 찾아왔는데 예전에 있던 분들이 여전히 계셔서 반가웠어요. 사랑방 말고 다른 단체에서도 자원활동을 했었는데, 그때의 인연이 개인적으로 이어지고는 있지만, 사람이 바뀌니 단체도 바뀌더라고요.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아쉽기도 했거든요. 구성원이 바뀌어도 사랑방을 사랑방스러운 곳으로 계속 이어가면 좋겠네요.
▲ 버들 님이 보내준 사진. 2014년 12월 6일부터 11일까지 6일간 서울시청 점거 무지개농성이 이어졌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시한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이미 통과되었음에도, 반동성애 세력에 굴복하며 선포를 거부했다.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 외치며 돌입한 무지개농성은 평등과 연대의 거점이었다.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 아니, 이야기가 있을까요?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돌보고 가꾸어가면 좋겠어요. 아. 사랑방과 어울리는 노래가 떠올랐어요. 여기 들어올 때 메주향 같은 은은한 향이 났는데, 사랑방의 은은한 향기가 너르게 퍼져가길 바랄게요.
♪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 노고지리, <찻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