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현장> 2000년 한국의 노숙자

그들에 대한 편견의 시선부터 거두자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12월 12일 밤 10시경,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역 지하보도에는 노숙자 30여 명이 서넛씩 짝을 지어 옹기종기 모여있다. 어디서 챙겨왔는지 때가 꼬질꼬질 낀 카시미론 이불 안으로 벌써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고, 한편에서는 술판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조각난 신문지는 바람에 나뒹굴고, 깨진 소주병 파편들이 을씨년스럽기만 한데, 그 와중에서도 병든 닭처럼 술기운에 잠을 청하는 아저씨에게 돗자리를 팔러 다니는 아줌마의 발길은 분주하기만 하다.

이제 막 이가 나기 시작한 아기를 바라보며 우유병을 물리는 한 남자에게 애 엄마는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자조 섞인 목소리로 "뭐 도망갔지"라고 한마디 던진다. 잠에 취하고 술에 취해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서울역 지하보도는 그나마 겨울바람을 피할 수 있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은 노숙을 할 수 없는 곳입니다"라는 경고문이 무색하기만 하다.


"내년 2-3월 최대고비 될 것"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타에서 심야상담을 하는 김해수 씨는 "최근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노숙자가 눈에 띌 만큼 증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미세하게 늘어나는 추세"라고 지적한다. 김 씨는 "경기불황이 곧장 노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해고당하고 가지고 있는 돈이 떨어질 무렵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이 바닥나면 노숙생활을 하게 되고, 이런 추세로 간다면 내년 2-3월이 최대고비가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타에서 추정하고 있는 노숙자 수는 대략 3백여명.


경찰·공안, 노숙자 쫓아내기 바빠

2년 전 IMF 한파를 겪으면서 사상초유의 경제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노숙자의 존재는 얼마쯤 우리 기억에서 잊혀졌다.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김해수 씨는 "IMF 지나고 일할 수 있고 생각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은 이미 사회로 복귀했다고 생각하기에 거리상담을 나가면 주위의 상인들은 이들을 강제로라도 수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시선을 느낄 때마다 노숙자에 대한 편견이 노숙자를 사회로 복귀시키고 자활시키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서울역이나 영등포 역전을 중심으로 경찰이나 철도공안들이 노숙자들을 내모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9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동안 영등포역에서는 전투경찰과 방범대원, 구청직원들이 동원되어 노숙자들을 강제로 내쫓은 사건이 있었다. 또한 지난 11월 8일 SBS 저녁8시 뉴스와 MBC 저녁9시 뉴스에 서울역 노숙자에 대한 보도가 나가자, 다음날 0시 30분부터 1시까지 영등포역 공안과 경찰들이 이곳에서 자고 있었던 노숙자들을 강제로 내보낸 사건도 있었다. 물론 취재를 하려했던 방송사들은 헛탕을 칠 수밖에 없었다.

이기옥(햇살보금자리 간사)씨는 말한다. "방송사에서 서울역을 촬영하고 영등포로 오려고 했는데 영등포 경찰서 사람들과 철도공안들이 노숙자들을 감춘 거예요. 모두 내보낸 거죠. 아직도 거리노숙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셈이죠. 이들을 숨기고 감추려하는 것도 인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옥 씨는 덧붙여 말한다. "노숙은 정말 최후의 선택이죠. 조금이라도 돈이 있다면 쪽방이나 여인숙을 이용합니다. 따라서 빨래하고 목욕하고 보건의료서비스나 인권, 법률문제까지 상담할 수 있는 주간편의시설과 밤만이라도 잠을 잘 수 있는 현장보호시설이 노숙자들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 11월 17일 민간단체와 가진 세미나에서 "정부시책을 따르지 않는 노숙자는 도와줄 수 없다"는 부동의 입장을 다시 천명했다. 즉 편의시설들이 거리노숙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쉼터 입소를 통한 자활은 지원하되, 거리노숙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11월 16일 서울시는 거리노숙자 전원을 쉼터에 입소시킬 것을 목표로 '동절기 심야상담 발대식'을 가졌다. 사회복지사, 경찰, 일반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특별상담팀이 매일 심야에 노숙현장을 방문, 상담을 통해 노숙자들에게 쉼터입소를 권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옥 씨는 "쉼터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 단체생활에 잘 적응 못하는 사람에게도 대안은 있어야 한다.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거리에서 자활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어 "노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이들은 정말 불우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다. 살아오면서 줄곧 무시당했고 사람으로서 기본적 존중감을 받아보지 못했다. 지금 그들의 모습은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까지는 노숙을 개인적 특성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며,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