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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두시간의 인권이야기] 대추 초등학교에 맺힌 한

대추 초등학교.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0-12번지. 1969년 3월 1일 설립. 2000년 9월 1일 폐교. 소유자 경기도 교육청. 관리자 평택시청 문화관광과, 두레풍물보존회. 2002년부터 두레풍물보존회에서 관리하면서 건물 사용. 2005년 6월 2일 국방부 고시 2005-12호로 미군 2사단 이전 지역으로 지정. 2005년 7월 25일 평택시청 문화공보과에서 두레풍물보존회에 8월 15일까지 퇴거하라고 통보.

대추리 주민들은 1952년 한국전쟁 중에 이승만 정부와 미국이 대북 폭격을 위한 미군기지를 신설하면서 구 대추리에서 추방된 전쟁 난민들이다. 고향을 등진 이들 실향민들은 마을 공유지 1200평이 있던 자리인 지금의 대추리에 정착을 시도했다. 집과 마을, 농토와 임야 등은 모두 군사기지에 편입돼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땅을 강탈당한 농민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고, 빼앗긴 땅을 오늘날까지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은 상처 입은 정신과 몸을 추슬러 살 길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대추리의 논 중의 논인 황새울 들녘을 바다에서 건져냈다. 어디까지나 주민들 스스로 정직한 노동으로 일구어낸 땅이었다.

그 당시 1968년까지 대추리·도두리 마을 어린이들은 동기 저수지라 하여 겨울내 논에 가둬둔 물이 넘실거리는 논길을 따라 3-4km를 걸어서 계성 초등학교에 갔다. 그 뒤 1969년 계성 초등학교의 대추 분교가 마침내 막 문을 여는 순간 학생수는 2개 반에 100여명이나 될 것이었다.

이 같은 사정을 이해하고 대추 초등학교 설립을 제안한 것은 정부 당국이 아니라 주민들이었다. 주민들은 형편에 따라 두 말, 다섯 말씩 쌀을 내놓아 학교 부지에 사용하기 위한 땅을 사들였다. 경운기를 동원해 흙을 퍼 나르고 골라서 운동장을 다졌다. 그리고 이 땅을 경기도 교육청에 기증했다. 첫 입학생들은 두 시간 공부하고 두 시간 잔디를 떠 운동장에 입혔다.

대추 분교는 학생수가 300∼400명에 이르렀을 때는 대추 초등학교로 독립하기도 했다가 학생수가 줄면서는 다시 대추 분교로 축소됐다. 그러다가 대추리에 어린이 숫자가 9명으로까지 줄면서 폐교되기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폐교에 반대했지만 교육청은 폐교를 결정했다.

주민들은 어린이들에게 보다 많은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땀 흘려 학교를 세웠다. 결코 미군에게 주라고 이 학교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폐교 뒤에도 학교는 두레풍물보존회가 건물을 관리하면서 교육시설로 쓰였다. 최근에는 정부의 그릇된 결정을 바로잡으려는 집회와 시위가 많이 열리면서, 이 곳을 찾는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산 교육이 되고 있다.

대추 초등학교는 대추리 주민의 땀과 혼이 깃든 학교다. 말 그대로 그렇다. 반대로 정부는 책상에 앉아 허가 내준 것밖에는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는 도리어 학교를 군사 목적으로 쓰겠다고 한다. 평택시 공무원에게 전화 수화기를 들려줘서 두레풍물보존회에게 8월 15일까지 학교를 비워달라고 말하게 했다. 주민들은 정부의 이 같은 횡포에 서러우면서도, 학교를 세운 본래 정신을 꿋꿋이 이어가려 하고 있다.

오는 17일은 '낮도둑놈들'의 표적이 돼 버린 대추 초등학교에서, 인생의 말년에 이른 대추리 주민들이 난생 처음으로 도서관을 여는 날이다. 주민들은 내일 지구의 종말을 맞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그렇게 한다. 누군들 그 흙 한 줌이라도 이들이 내주길 바랄 수 있을까. 이들은 고향에서 평화롭게 대를 이어가며 계속 살고 싶다. 미군기지 확장을 반드시 막아낼 것이다. 여러분들이 책을 가져오시길 부탁드린다.
덧붙임

두시간 님은 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