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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문헌으로 인권읽기] 1923 아동의 권리 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

최초의 국제 아동인권선언…보호적 관점은 오늘날도 여전

한 해의 아동 관련 행사의 90%이상이 열린다는 5월의 첫 주가 지나갔다. 5월의 찬란한 햇빛처럼 빛나는 아이들의 웃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그런 웃음을 얻어내기 위한 한바탕 홍수를 치렀을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낀다’고 말하며 노력하는 사람은 많다. 실제로 아이들 문제라면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가장 좋은 것을 해주려는 부모나 교사, 어른들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를 위한다는 어른의 자기 방식에 따른 판단과 책임감, 애정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동의 인권을 존중해서 인지는 따져볼 문제이다.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과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다.

아동이 보호와 양육과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경우에는 무엇이 아이들에게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사람도, 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도, 충족의 방식을 결정하는 사람도 ‘자비로운’ 어른이다. 그 어른이 자비롭지 못한 경우에 아동의 운이 나쁜 것으로 치부하고 말 것인가? 그렇다. 인권을 침해받았다면 당연히 그 회복과 존중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어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복종해야 하는 존재에게는 그 책임을 물을 권리가 없으니 자신의 나쁜 운을 탓해야 할 것이다.

반면 아동을 인권의 주체로 인정할 때는 아이들 자신이 무엇이 자신에게 필요하고 가장 유익한지를 표현하고 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또한 그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국가에 대해 그 책임을 명확하게 물을 수 있다. 권리의 주체는 의무의 주체를 반드시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권의 역사 속에서 아동의 인권은 아주 뒤늦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늘 읽어볼 문헌은 ‘아동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다. 이 선언은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1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기아와 질병에 신음하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에서 인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국제아동구호기금(Save the Children)'이 1923년에 기초하여 발표한 것이다(같은 해에 우리나라에서도 소년운동협회가 어린이날의 제정을 기념하여 ‘어린이의 권리공약 3장’을 발표했다). 그리고 국제연맹총회가 1924년에 그 선언 그대로를 채택하여 ‘아동의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처음으로 국제사회가 아동의 권리보호를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게 된 증거가 된 문서이다.

이 선언은 아동의 ‘권리’를 제목으로 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실상의 내용은 아동을 보호와 구제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20세기 전반부의 지배적인 아동관을 반영하고 있다. 5가지 밖에 안되는 조항이 말해주는 내용은 권리의 내용이라 하기에는 빈약하기 그지없으며 ‘비행아동은 교화해야 한다’는 데서 드러나듯 권리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서의 아동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보호와 구제조차 하고 있지 못한 현실, ‘배고픈 아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조차 수행하고 있지 못한 어른들의 자화상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태국의 한 난민 어린이. 열악한 현실에서도 어린이는 희망의 웃음꽃을 피운다. <출처> Friends without Borders

▲ 태국의 한 난민 어린이. 열악한 현실에서도 어린이는 희망의 웃음꽃을 피운다. <출처> Friends without Borders



이런 인식이 한 단계 도약하는데는 또 한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빈곤과 기아, 영양실조, 방임과 학대, 인종차별을 포함한 갖은 차별과 착취, 열악한 교육과 문맹 등 아동이 감당해야 할 고통에 대한 반성 속에서 국제사회의 특별한 조치가 요구됐다.

온정과 시혜의 대상으로서의 아동이 아니라 분명한 인권의 주체로서 아동을 인정하고 그런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우선적으로 국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1924년 선언의 내용은 1959년 유엔에 채택한 또다른 ‘아동의 권리선언’으로 보완됐고, 아동의 권리를 선언문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조약을 통해 보장해야 한다는 필요성 속에서 1989년 아동권리협약이 탄생하게 된다. 이 조약은 현재 유엔이 채택한 국제조약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준국을 가진 가장 권위 있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기준으로 이해되고 있다. 18세 미만의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는 이 조약이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은 △아동은 어른과 다름없는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서 인권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 △아동의 ‘최상’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 △권리의 주체로서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고 어른들은 그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기준이란 것은 문서의 형식을 빌어 진화돼 왔지만 어른들의 인식, 아동의 인권을 보장할 의무의 주체인 국가의 인식이 그에 발맞춰 변화해 온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식은 1923년의 인식 수준이고, 실천은 그것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시혜의 대상이고 권리의 주체인가의 문제를 떠나 배고픈 아이에게 먹을 것이 아픈 아이에게 치료가 제공되고 있다고 우리 사회는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아동을 인권의 주체라 할 경우에 아동의 미성숙함이 항상 문젯거리가 된다. 즉, 어른들이 아동의 권리행사능력을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인권이란 어떤 자격이나 능력을 요구하는 권리가 아니라는 기본적 명제를 무시하고 있다. 인권이란 말 그대로 ‘인간이라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누구나 차별 없이 누려야 할 필수적인 권리’이다. 인권은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권리, 인간이면 누구나 존엄한 삶의 조건을 누림으로써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하므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인 것이다. 때문에 인권은 ‘자격’을 논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권의 보편성은 인권의 대원칙으로서 현실에서 이러한 보편성의 예외에 속하여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인권주장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에 ‘자격’을 따진다면 인권을 존중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며 얼마나 될 것인가?

아동이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갖기에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는 인권과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을 어른과 다름없이 누릴 자격이 있는 보편적인 인권의 주체로 인정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동의 인권에서나 어른의 인권에서나 인권의 보편성은 중요하다. 어른들이 인권문제에 대해 ‘아이들만이라도’ 예외로 하자는 주장을 자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아동에 대한 노동착취나 성착취, 아동의 전쟁동원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비난의 목소리가 훨씬 크다. 여기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접근은 ‘아이들만이라도 예외로 하자, 아이들은 빼주자’가 아니라 아이와 어른을 포함하는 모든 인간에 대한 노동착취, 성착취, 전쟁에 대한 반대인 것이다. 아이이든 어른이든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른들 ‘조차’ 당하는 일을 아동이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고 같은 일을 겪더라도 더 큰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만이라도’를 강조하는 것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어른과 마찬가지의 보편적 인권을 가졌다 하지만 아동에게는 ‘특수성’이 있다. 계속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놓여있다는 것, 권리행사에 있어 어른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동은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고 있는 인권과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침해할 수 없는 기본적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는 보편적인 인권의 주체인 동시에, 어른과 구분되는 ‘아동’으로서의 고유한 권리, 예를 들면 양육받고 보호받을 권리 등을 인정받아야 하는 주체가 된다. 이것은 ‘아동에게 자율적인 권리행사 능력이 있다 혹은 없다’ 중의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닌데 아동의 인권을 주장하면 당장 아이들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할 줄 안다고 확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유감이다. 어떤 연령대에 선을 그어놓고 ‘이 선 아래로는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니까 권리행사능력이 없다. 따라서 아이들의 권리는 제한되어야 한다’고 해버릴 것이 아니라, 아동의 특수성에서 연유하는 권리행사의 어려움을 더 특별히 고려하고 배려해야 하는 책임이 사회와 국가에 있는 것이다. 즉, 아동의 특수성을 강조하여 권리 주체의 ‘예외’를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권의 보편적 보장에 그 목적이 있고, 그 방법에 있어 세심한 접근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권은 등장하면서부터 ‘보편적’이라 선언되었지만 그 실상은 아주 달랐다. 보편적 인권을 내건 혁명의 뒤안에는 노동자를 비롯해 여성, 아동, 외국인 등에 대한 차별과 권리제한이 엄연히 존재했다. 형식적으로 인권의 ‘보편성’을 부르짖은 지배계급은 인권의 주체를 가능한 한 제한하고 인권의 실질적 보장을 봉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에 맞서 배제된 이들은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도 권리의 주체에서 배제되고 차별받는 소수자들은 인간이기에 앞서 외국인, 가난한 자, 여성, 아동, 장애인이라는 이유 등으로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다.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연령주의 등 위계와 불평등을 강요함으로써 유지되는 것이 현실 사회이다. 특히 스스로를 조직화함으로써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여타 소수자 집단과 달리 그런 위치에 있지 못한 아동들의 인권현실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1923 아동의 권리 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the Child)

1. 아동에게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아동의 정상적 발전에 필수적인 수단이 제공돼야 한다.

2. 배고픈 아동은 먹여야 하고, 아픈 아동은 치료해야 하고, 지체 아동은 도와야 하고, 비행 아동은 교화해야 하고, 고아와 집 없는 아동에게는 주거와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3. 아동은 재난시에 우선적으로 구조를 받아야 한다.

4. 아동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처지에 있어야 하고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5. 아동은 자신의 재능을 동료 인류에 대한 봉사에 헌신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양육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