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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종간이식 꼼꼼히 따져봐야

과학기술과 인권 이야기 (2)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논란이 됐던 생명공학 쟁점 중의 하나가 인간배아복제 허용여부였다. 비록 제한적 허용으로 입법화가 이뤄져 논란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논쟁 기간 동안 찬반양론의 주장들이 비교적 널리 알려져 일반시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이 제공되는 성과는 있었다.

실험중인 돼지 [출처] www.crt-online.org

▲ 실험중인 돼지 [출처] www.crt-online.org



최근 '이종간이식'이 새로운 산업으로 조명을 받고 있다. 정부의 차세대성장동력산업으로 채택돼 향후 10여 년간 막대한 세금이 투입될 예정이며,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를 동북아 장기이식의 거점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에 편승해 주류 언론들은 때마다 과장된 기대를 유포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종간이식을 둘러싼 여러 쟁점에 대한 균형 잡힌 소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기술의 타당성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험을 기다리는 영장류 [출처] www.crt-online.org

▲ 실험을 기다리는 영장류 [출처] www.crt-online.org



이종간이식은 비인간 생명체의 세포나 조직 혹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기술을 말한다. 각종 성인병 등으로 인해 심장, 신장과 같은 장기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 기술을 옹호하는 과학자와 기업들은 돼지와 같은 동물 장기의 이식이 현재 만연한 이식용 장기 부족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식 장기 부족을 해결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접어두더라도 이종간이식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과학적·사회적·윤리적 문제들과 공공보건상의 쟁점들을 제기한다.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면역거부반응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면역거부반응을 해결하기 위해 면역에 관련된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추가하는 실험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 면역에 관련된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써 면역거부반응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동물의 면역체계에 관련하는 유전자는 상당히 많을 뿐만 아니라 서로 복합적인 작용을 한다는데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사람은 물론이고 돼지에서 영장류로의 이종간이식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상태이다.

형질전환 된 복제돼지 (2001. PPL사) [출처] www.crt-online.org

▲ 형질전환 된 복제돼지 (2001. PPL사) [출처] www.crt-online.org



이종간이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식 과정에서 이종간전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식조직에 함께 운반된 바이러스 등이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실험용으로 많이 쓰이는 돼지의 경우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많이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바이러스 또한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바이러스는 돼지에게는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인간으로 옮겨질 경우에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최악의 경우 조류독감이나 사스처럼 신종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무균돼지사육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종간전염에 대한 경고는 국내 일부 면역학자들 뿐만 아니라 <네이처>와 같은 유명 저널에서도 제기하고 있다. 이종간전염의 문제는 공중보건의 문제로까지 연결되는데 신종 병원체의 창궐 우려로 이식받을 환자와 의사만의 동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것은 이식 대상자만이 아닌 일반대중들이 그 위험에 대해서 알아야 할뿐만 아니라 그 결정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국내의 일방적 상황과는 달리 선진국의 일부 국가나 국제기구에서는 이종간 장기이식 연구의 허용 여부를 일부 과학자나 기업에 맡기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을 뒤돌아보게 한다. 이제라도 형식적인 윤리적·사회적 검토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공론화와 의견수렴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연구의 타당성과 위험을 균형 있게 정리 소개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덧붙임

김병수 님은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