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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 영화를 만나다] 인권 영화는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1)

지난 2002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내 최초의 인권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하였고, 충무로 유명 감독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여섯 개의 시선>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에 '국내 최초 인권 영화'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인 몰지각한 발언은, 주목받지 못한 인권 침해 현장에서 단순히 카메라 기사가 아니라 연대의 마음으로 렌즈의 초점을 맞추었던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동시에 이는 변방에서 꾸준히 만들어졌던 인권 영화들이 대중적으로 폭넓게 소통되고 있지 못함을 반증한다.

영화가 여가를 즐기기 위한 소비 수단, 고단한 삶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들을 잠재울 수 있는 도피처로만 규정되어, 사회 변화를 위하여 행동을 촉구하거나 인권의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사색의 깊이를 더해주는 영화는 '영화'라는 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기 일쑤이다. 저급한 폭력과 억지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상업 영화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반면, 인권 영화가 서 있는 집은 턱없이 비좁다. 묻힌 채 쌓여 있는 수북한 인권 문제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영상 이미지로 새겨지고 있는 현실을 새삼 상기할 때, 갑갑함은 더할 수밖에 없다.

2004년 장애인권영화제 풍경 [출처]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 2004년 장애인권영화제 풍경 [출처]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최근 10년 동안 인권/노동/여성/장애인/환경 등의 영화제들이 개최되고, 인디다큐페스티발 등의 독립영화제들이 생겨나면서, 인권 영화가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아직 상시화 되지 못한, 비정규직/반전/여성노동 등을 주제로 한 소박한 영화제들이 관련 사회단체들의 주최로 개최된 바 있다. 인권 영화를 접촉할 수 있는 지면이 확대되었다는 측면에서 크고 작은 영화제들의 존재는 환영할 만하다. 그렇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르지 않고 '영화제'라는 행사를 안정적으로 치를 수 있는 공간의 부재, 상영 설비 및 필름 수급 등을 위해 요구되는 물질적 조건이 녹록치 않음을 고려할 때, 이윤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영화제를 열기란 쉽지 않다. 또한 영화제는 일년에 한번 뿐인 일회적 행사이기 때문에 영화제를 찾아올만한 경제사회적 여건이 갖추어진 관객들과만 만날 수 있다. 일각에서, 영화관을 찾는 행위 자체가 익숙지 않고, 애써 정보를 찾아 문화생활을 누려본 경험을 간직하지 못한 이들을 찾아가는 영화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적 권리가 일정 수준의 경제사회적 권리를 획득하고 나서야 확보할 수 있는 각박한 현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독립 영화를 주류 사회에서 배제되는 가치를 지향하며 새로운 영상 언어를 시험하는 동시에, 제작과 배급 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는 것이라 정의내릴 때, 인권 영화와 독립 영화의 최대공약수는 적지 않다.

인디씨네넷 탑 이미지 [출처] 인디씨네넷 홈페이지

▲ 인디씨네넷 탑 이미지 [출처] 인디씨네넷 홈페이지



최근 한국독립영화협회(아래 독협)는 "온라인상에서 독립영화 상영정보와 상영신청을 받아 오프라인 상영지원을 대행하는 웹사이트"인 인디씨네넷()을 만들었다. 이를 담당하고 있는 독협 배급팀의 김화범 씨는 "이 사이트는 시장의 선택에서 배제당하는 독립 영화의 현실을 감안, 현재 개별 감독 하에 이루어지는 독립 영화 배급을 둘러싼 한계와 성과를 점검하여 궁극적으로 독립영화 감독들로 구성된 조합, 독립 영화 전문 배급사의 설립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준비 단계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극장 상영이 아닌 시민사회단체, 학교, 작은 공동체 등에서 추진하는 커뮤니케이션 중심의 상영회를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며 그 의의를 설명했다. 박스오피스에 따라 상영일수가 정해지는 정글의 하나인 일반 극장에서 나눌 수 있는 교감의 밀도가 높지 못함을 염두에 둘 때, 작은 상영회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상업성 여부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독립 영화를 안정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독립영화전용관의 설립이 절실한 대목이기도 하다.

작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극장에 입성한 <송환>의 배급을 담당했던 푸른영상의 삼동이 사무국장은 "극장에서 배급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홍보효과가 뛰어나고, 하루 몇 회 이상 상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좀더 광범위하게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그렇지만 <송환>의 극장 추진이 가능했고, 타 인권 영화와 달리 유난히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데에는, 작품 자체가 지닌 울림이 큰 덕은 물론, 독립 영화계의 대부로 상징되는 감독의 위상이나 12년의 제작 기간이라는 점 역시 적잖이 작용한 게 사실이다. 더불어 당시 마이클 무어의 작품을 필두로, 북미 지역에서 다큐멘터리가 주류 영화계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는 흐름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송환>을 칭송하던 숱한 언론들은 <송환>의 긴 제작 기간동안 참여한 숱한 스탭들의 노고는 외면했고, 여타 국내 인권영화로 그 관심의 넓이를 확장하지 않았다.

또한 삼동 씨는 "관객 수에 의존하여 상영기간이 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극장 상영을 위해서는 등급심의를 꼭 받아야 한다는 제약 조건 등은 극장 상영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에 <송환>은 "열린 모든 곳이 상영관"이라 지향하여, 미디어 참세상, 민중의 소리와 함께 온라인 상영회를 열었고, 상영신청 게시판을 두어 지역 상영회를 찾아갔다.

인권의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일상적으로 인권 영화와 소통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염두에 둘 때, 지역 상영회의 조직, 온라인과 방송 매체의 활용이 중요한 화두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