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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헌법 정신 위반하는 잇단 결정

헌재, '최저생계비' 위헌 소원 기각

최저생계비가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 오히려 불평등하게 적용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아래 헌재)가 28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헌법정신에 기반해야 하는 헌재의 결정이 정부 정책보다 오히려 퇴보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02년 박정자 씨 외 2명은 "보건복지부장관이 공표한 2002년도 국민기초생활보장 최저생계비 결정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2002년도 3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한 달에 78만7천여 원이고) 현금급여를 기준으로 했을 때에는 69만2천여 원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박 씨는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이고 딸 이승연 씨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서 이들 가족에게 한 달 생활비로 69만2천여 원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금액이다. 또한 장애인의 경우 한 달 평균 15만8천 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지만 장애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이어서 불평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저생계비 외에 1급 중증장애인에게 부가급여로서 3개월에 24만 원을 지급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실제 생활비로 지출되는 금액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에 박 씨 외 2명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계비가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 제11조 제1항의 평등권 및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4조는 "이 법에 의한 생활보장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 결정 내용은 장애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괄적으로 농촌 중소도시 가구를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대다수 대도시 장애인 가구가 최저생계비를 통해 최저생계를 보장받는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도 모르는지 헌재는 만장일치로 이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인간다운 생활'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국가가 '객관적인 최소한의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국가가 '객관적인 최소한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또 "최저생계비가 타 법률에 의한 지원 등을 고려했을 때 장애인이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고려한 것이라 볼 수 있다"며 "국가가 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가 제시한 '타 법률에 의한 지원'에는 심지어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도 포함되어 있다.

빈곤사회연대 유의선 사무국장은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정신을 지켜야 할 헌재가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고 있다"며 "정부안보다 오히려 퇴행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올해는 최저생계비가 새롭게 계측되는 해이고 정부는 이미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 도입을 약속했다.

유 사무국장은 "헌재가 각하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황당해하며 "헌재가 정부 계획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혹은 가구유형별 최저생계비 도입을 부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헌재는 과연 최저생계비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유 사무국장은 "29일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인 시위에 돌입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