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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들출 수 없었던 폭력의 고통

장애 여성들에게 가정은 어떤 것일까. 가정은, 집안에서 갇혀 지내기 쉬운 장애 여성들의 일상 구석구석을 지배하면서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지만 정작 그녀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가정 내에서 묻히고, 사회적으로도 장애 여성들의 경험에 입각한 목소리는 도드라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날 짐스러워한다", "모든 가족 행사에 번번이 소외되어 자존감을 느낄 수 없다", "시설에 들어가길 은근히 강요한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장명숙 소장은 장애 여성들이 생각하는 현실 속 가정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했다.

장애 여성의 67.8%가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가졌다는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의 '2002년도 장애인 실태조사'가 시사하는 것처럼, 그녀들은 자립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 여성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미비한 실정에서,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성폭력에 대해서 함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시각장애인여성회에서는 "가족의 철저한 무시와 차별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독에서 지내며 그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던 여성시각장애인도 있다"며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상기시켰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의 배복주 소장은 "혈연이나 혼인으로 맺어진 가정뿐만 아니라, 후견인과의 동거 등으로 이루어진 비혈연, 비혼인 가정에서도 폭력이 발생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배 소장은 "장애 여성들을 위한 구조적 보호막이 없는 상태에서, 소수 존재하는 후견인 층은 소중한 것이지만 일부 후견인들이 자기 결정권이 미약한 중증 혹은 정신지체 장애 여성들의 건강, 결혼, 경제적 문제에 지나치게 관여하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여성장애인 가정폭력 예방 매뉴얼'을 제작 중인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27일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예방 매뉴얼 제작을 위한 워크샵을 열고 이와 같이 장애 여성과 가정폭력의 감춰진 고리를 공개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 장애 여성을 위한 전문 가정폭력 상담소는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내의 가정폭력 상담소 단 한 군데 뿐이다. 워크샵 참석자들은 "장애 여성 가정폭력 상담소와 쉼터의 전국적 확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