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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예비역 2년차'의 부끄러운 고백

▷ 즐거운 물구나무 ◀

먼저, 부끄러운 고백 하나. 나는 올해로 '예비역 2년차'가 됐다. 군대는 2년 2개월 동안 누가 될지도 모를 '적'을 향해 총을 들어야 한다는 적대심을 나에게 철저히 주입하려 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볼 때마다 항상 빚진 마음이 들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 예비군 훈련에는 이미 '적'도, '총'도 없다. 다만 방향 잃은 '의무' 혹은 '벌금'만 있을 뿐.

고작 2년밖에 안되긴 하지만, 예비군 훈련에 대한 기억에는 군대 특유의 '답답함'과 '지루함'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하나가 추가됐다. 보수 우익 이데올로기의 집단적 재생산.

"정치권에 있는 386세대라는 작자들, 전부 다 착한 국민들 꼬드겨서 '민중봉기'를 일으키려고 하는 작자들입니다." 반쯤 감겨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적의로 가득 찬 그의 투박한 말투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비군 동대장'인 그는 예비군 훈련에 꾸역꾸역 모여든 예비군들을 향해 굳이 '최고의 애국자'라 칭하며, '북한과 더불어 운동권 출신 정치하는 놈들이 바로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을 주입하고자 했다. 짧지 않았던 그의 '정신교육' 시간엔 '북한'도 몇 번 나왔고, '주사파'라는 말도 나왔다. '공산정권'이라는 말도 나온 듯 싶다. 그 역시 '적'을 향한 총을 내려놓고 '예비역'이 된 지 족히 몇 년은 되어 보였지만, 더 이상 외부로 향하지만은 않는 그의 적대감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섬뜩했다.

모두가 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예비역들은 예비군 훈련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군사문화에 익숙해지는 듯했다. 그들은 사병과 부사관으로 나뉘었고 또다시 육군과 해병대로 나뉘었다. 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입영 시기에 따른 서열관계가 형성됐다. 이제 어떤 이는 일방적으로 말을 '까고' 명령을 하고, 다른 이는 존대를 하고 명령에 따르는 존재가 됐다. 대학 다닐 때 예비군 훈련을 마친 선배들은 술자리에서 후배들을 불러다가 '줄을 세우곤' 했다. 여학생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우리 안의 군사주의는 그렇게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었다.

예비군 훈련을 통한 예비역들의 '전투력'은 항상 그런 식으로만 강화될 뿐이었다. 군사주의를 통해서 스스로 더 강하다거나 우월하다고 믿는 그들만의 신화. 마침, 지난 4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외친 극우세력 중 상당수가 군복을 입은 늙은 '예비역'들이었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