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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의료 공공성 향한 특허법 개정의 길 열리나

'강제실시 제도 개선 관련 특허법 개정 공청회' 열려

'아파도 돈이 없으면 그냥 죽으라'고 강요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에 맞서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한 특허법 개정 논의가 닻을 올렸다.

23일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 김태홍 의원이 주관하고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과 민중의료연합, 보건의료단체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이 공동 주최한 '의약품접근권 향상과 강제실시제도의 개선과 관련한 특허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진행됐다.

이날 발제를 맡은 남희섭 변리사는 "현행 특허법의 강제실시 제도는 TRIPs (무역관련지적재산권관련협정)의 취지에 맞지 않아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강제실시 제도가 도입되면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을 제3자가 '비상업적으로' 실시하도록 허가할 수 있다. 즉 강제실시 적용으로 특허 의약품을 특허권자의 허락이 없이도 국내 제약회사가 생산해 복제약을 싼 가격으로 약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현행 국내 특허법은 강제실시를 국가 긴급사태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실시된 적이 없다. 국가 긴급사태나 의약품 가격이 너무 높고, 생산자가 충분한 양을 공급하지 않는 식의 특허권 남용 등과 같은 경우 강제실시를 할 수 있도록 한 TRIPs를 잘못 해석해 적용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해 왔던 것. 이에 남 변리사는 "강제실시의 요건을 완화하고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특허법 개정을 주장했다.

그러나 특허청 발명정책과 이익희 사무관은 "특허권과 관련된 제도개선을 추진함에 있어 사유재산이자 지식재산인 특허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고려해야 한다"며 강제 실시권을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에 대해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사무국장은 "특허제도는 특허권의 보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강제실시 제도 등을 통한 공공성의 보장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반박했다. 더 나아가 충북대 의대 이진석 교수는 "의약품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 제도는 빈부격차 확대, 세계경제의 수직적 분업구조에 따른 국가간 갈등과 대립을 '인도주의'와 '상호호혜'의 원칙으로 재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정책방안"이라며 "최근 국민의료비 증가의 원인 중에 하나가 약제비의 증가에 있는 만큼 향후 내수용 의약품 생산의 강제실시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에 의한 건강권 침해는 수 차례에 걸쳐 지적되어 왔다. 대표적인 경우로 글리벡은 출시 당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획기적인 치료제로 소개됐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가 한 알에 2만5천 원을 책정하면서 매달 600만원을 약값으로 지불할 능력이 없는 환자는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들은 국내에서 최초로 강제 실시권을 청구했지만 당시 특허청은 이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