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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유의선의 인권이야기 ◑ 시청 앞 잔디만도 못한 노숙인 인권

지난달 26일 서울시는 노숙인 의료구호비 방침을 예고도 없이 통보했다. 이는 만성·중증질환 노숙인 의료지원의 핵심인 입원과 수술에 대한 '노숙인 의료구호비'지원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중단방침의 이유를 "노숙인 의료구호 예산이 4월말로 바닥났고, 의료지원을 받는 노숙인 중 중증환자들이 의료구호비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과다 집행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시는 터무니없이 적은 예산을 책정해 놓고, 의사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입원과 수술을 노숙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의료구호비 중단방침으로 인해 이미 많은 노숙인들이 병원으로부터 입원이나 수술을 거부당하고 있다. 장 씨의 경우 쉼터에 입소해 생활하다가 4월 20일 교통사고로 다친 발목이 잘못 접합되어 수술이 필요하다는 조치가 내려졌다. 수술을 위해 5월 4일로 입원일자가 지정되었으나 서울시의 방침으로 인해 입원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장 씨의 경우 10분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중증·만성 노숙인이 서울시의 방침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고, 사전에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을 키워 가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시는 시청 앞 잔디광장 조성을 위해 53억 원을 집행했고, 죽은 잔디를 보수하기 위해 1억 7천 만원을 배정하고 있다. 또한 'Hi-Seoul'축제에는 15억 원을 들였다. '잔디는 살아도, 노숙인은 못하는 hi-seoul'이라는 노숙인 단체들의 외침이 현재 우리사회 노숙인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숙인 의료구호비 예산 12억 원이 바닥났다는 이유로 치료받아야할 노숙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서울시에게 노숙인은 이미 '시민'이 아니라 보여 주기식 사업에 있어 불편하고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일 뿐이다.

노숙인 수가 1년에 400명 정도 감소한다고 한다. 이는 노숙생활을 벗어나서가 아니라 1년에 400명 정도가 행려자로 죽어간 '사망 노숙인'이라고 한다. 서울시 조치에 항의하는 선전전을 마치고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한 노숙인 분이 '어제 김 아무개가 두들겨 맞고 죽었어'라고 담담하게 노숙인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숙인도 인간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 명제가 우리에게 처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노숙인의 인권이 '인권'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후안무치함 때문일 것이다. 치료를 받거나 편안한 주거를 누릴 권리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어있을 뿐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들은, '노숙자'라는 낙인이 찍힌 우리사회 빈민의 한 모습이다.

서울시의 노숙인 의료구호비 중단방침에 항의하며 노숙인 인권단체들은 '의료구호 중단방침 철회와 근본적인 노숙인 의료보장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무기한 항의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힘은 미약하다. 하루에 한 명 꼴로 사망하는 노숙인의 '생존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연대가 절실하다.

◎유의선 님은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