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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북 '식량권' 빨간불

식량지원 바닥나…세계식량계획 긴급 지원 호소


개선의 조짐을 보였던 이북 사람들의 식량권 상황이 국제사회의 지원 감소로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유엔 구호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의 원조를 받던 이북 사람들 중 4백만 명 이상이 최근 지원이 끊긴 채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의 마수드 하이더 대북 특사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의 식량재고가 바닥 나, 식량 지원이 필수적인 어린이, 여성, 고령자 등 4백만 명이 넘는 주요 수급자들에 대한 식량 지원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현재는 오직 임산부 7만5천명과 고아원·병원에 있는 아동 8천명만이 세계식량계획의 지원을 받는 상태다. 세계식량계획은 그간 영양 결핍이 심하고, 최소 영양을 확보할 수 있는 생계수단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식량 지원을 해왔다.

하이더 특사는 "조속히 곡물 지원이 되지 않으면, 건강의 손상은 회복이 어렵고 질병과 영양실조가 심각하게 증가할 것"이라며 "1990년대 후반부터 힘들게 이룬 이북 주민들의 영양 상태 개선이 다시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세계식량계획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을 고려할 때, 식량 사정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세계식량계획은 시장 경제원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경제구조조정의 여파로 불가피하게 북한 내 농산물 가격의 인플레가 심한데다 도시빈민층이 늘어 이북 주민들이 식량 지원 중단 사태를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좋은벗들' 이승용 평화인권부장은 "북한은 자체적으로 농경지가 부족하고 필요한 식량의 절반 가량 밖에 생산을 못해, 외부로부터의 식량 지원에 의존해왔다"며 "그런데 지원이 줄어 식량이 많이 부족하고, 전기 부족으로 상수도 공급이 원활치 못해 식수도 많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말했다.

세계식량계획 차원의 식량 지원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게 된 것은 2002년 9월부터다. 주요 대북 식량지원국이었던 일본이 납치자 문제 등을 고려해 2001년 이후 지원을 아예 중단했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감소했다. 세계식량계획은 올해 651만3천4백 명에게 약 48만5천 톤 분량의 식량 지원 계획을 세우고 1억7천1백만 달러의 재원 확보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등이 곡물 지원을 약속했으나, 이는 4월경에나 도착할 예정이고 추가 지원이 없을 경우 이마저도 6월이면 고갈된다. 하이더 특사는 원조량의 감소를 북한에 대한 비우호적인 정치 환경 때문인 것으로 보며, 이달 말 있을 핵 문제 관련 6자 회담 이후 상황이 진전되기를 기대했다.

하이더는 "인도적 책임을 다하는 게 지금 당장 시급하다"며 이북에 식량을 서둘러 지원해 줄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이승용 부장은 "인도적 지원은 조건 없이 이뤄져야 한다"며 "미국 등의 대북 강경정책, 국내의 퍼주기 논쟁 등으로 시달려 왔는데, 한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는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북에 대해서도 "제한된 지원 물자만이라도 최약자층에게 신속히 공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식량권은 세계인권선언, 사회권 규약 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 중 하나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식량권에 관한 일반논평 12에서 "국가들은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등 다른 나라에서도 식량권이 잘 향유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식량은 결코 정치적 경제적 압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