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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인간답게 살 권리 - 하월곡동 이야기 ⑤ 교육권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방치된 아이들

'배우지 못해서…', '학력이 짧아서…' 하월곡동 산2번지의 두 아버지가 한숨쉬며 뱉은 말이다. 달동네로 밀려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처지가 모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이란다. 지금 하는 노동으로는 가족들과 최저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들지만, '배운 게 없어서' 좀 더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구할 희망은 일찌감치 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자식들 앞에 놓인 미래가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자식의 학력을 결정하고, 학력이 경제·사회적 지위를 만드는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공교육 따라가기도 벅찬 아이들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이 득세하는 지금, 가난한 부모들의 불안대로 교육의 기회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하월곡동에서 8년째 '밤골아이네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숙경 수녀는 "대부분의 산동네 부모들은 보통 10만원이 넘는 학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는데, 지금의 교육현실에선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학교공부를 따라갈 수조차 없다"고 말한다. 달동네 아이들이 사교육뿐 아니라 공교육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 "지금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녀 문제가 덜 하지만, 재개발이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사교육에 의한 교육수준의 격차는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방은 빈곤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수업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모든 것은 공부방에 맡겨지고

빈곤지역에서 공부방이 하는 역할은 단순한 학습보조뿐이 아니다. 빈곤지역 아동들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은 단지 '학교공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숙경 수녀는 '빈곤이 낳는 가정해체, 가정불화 속에서 아이들이 방임·결식·학대·일탈·따돌림 등에 노출되고,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한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공간은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밥을 해결하고, 상실한 사회성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까지 국가는 그러한 역할을 민간 공부방에 떠넘겨왔다.


"공부방 법적 지원 절실"

빈곤 지역 아동을 위한 교육·문화공간을 제공해 왔음에도, 정작 공부방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 결국 무허가 시설일 수밖에 없는 공부방들은 언제나 운영비 부족에 시달린다.

이러한 상황은 하월곡동 산2번지 아이들이 다니는 '밤골아이네 공부방'도 마찬가지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에 98명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지원하지만 좁은 공간과 교사 부족으로 다 받을 수가 없어, 형편이 더 어려운 가정 순서로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숙경 수녀는 "지역특성상 심리치료가 필요한 아이들도 많지만 운영비 부족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부방의 심각한 재정난과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공부방을 인가하는 법적 토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해 12월, 산2번지 꼭대기의 한 구석진 방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모 군은 오래 전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단칸방을 찾았던 세 번 모두, 그는 낮에도 컴컴한 방에서 계속 잠만 자고 있었다. 어머니의 가출, 아버지의 병과 실업, 그리고 가난 속에서 그는 학교와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하지만, 김 군은 그 상태로 계속 방치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