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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유엔 아동권리협약 정부·민간단체 간담회 열려

성실·솔직·투명하게 임하라

"이번에는 준비된 문건만 읽고 끝내려는 생각하지 마세요." "전 과정과 결과물을 국민에게 잘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23일 과천정부청사에서는 유엔아동권리협약 2차 정부보고서 심사회의 준비를 위한 정부·민간단체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민간단체들은 정부측에 대한 요구와 당부를 했고,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경청했다. 우리 정부가 지난 91년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협약이행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5년마다 정기적으로 유엔에 제출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한국 정부 보고서 심사는 지난 96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민간단체들은 96년 1차 보고서 심사 때를 돌아보며 크게 몇 가지를 지적했다. 준비된 문건만 읽을 작정으로 회의에 임했던 정부대표단의 성의부족, '아동권리를 위한 국가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식의 왜곡·거짓 보고, 국민에게 보고서 제출과정과 심사결과를 전혀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이다. 이에 민간단체들은 이번 2차 보고서 심사에서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생산적인 대안모색을 위해서는 토론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성실한 준비는 필수이다. 또한 인권문제란 것이 없을 수 없는 것이므로, 솔직하게 인정할 문제는 인정하는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지 10년이 넘어선 지금 취해야 할 성숙한 자세임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의 이경아 외무관은 "솔직하게 문제를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민간단체들도 격려에 집중했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혔다.


소외된 아동에 보다 관심을

이어 민간단체들은 복지, 교육, 장애 등 개별분야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송경아 부장은 소외된 아동에 대한 접근을 강조하면서 결식아동 문제는 '밥'만이 아닌 '복합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 대도시를 벗어나면 폐교로 인해 아이들이 점점 더 먼 거리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면서 많은 곤란을 겪는 점, 아동학대방지사업이 시작된 지 1년밖에 안된 점을 고려하더라도 시도별 한군데 센타만으로는 아동의 접근이 어려운 점 등을 지적했다.

한국수양부모협회의 박영숙 회장은 "협약에서는 가정환경상실아동에 대한 보호의 우선순위를 가정위탁 다음에 입양 그리고 적절한 육아시설로 두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면서 "가정위탁에 대한 홍보와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가정환경상실 아동이 시설로 가야한다는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교조 서울지부 홍의표 인권교육국장은 "1·2차 보고서에서 누누이 지적되었지만 아동권리협약에 대한 기본적 홍보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는 큰 예산을 들이지 않더라도 학교를 포함한 기존 조직 내에서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이중호 사무관은 "각 부처에서 아동권리를 위해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이 교육부와 협의체계를 갖춰 연계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노동부에서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와 관련된 권리를 알리고 있지만 정작 청소년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내용이 교원 연수 등에 도입되어 일선 학교에서 지도하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청소년노동권 보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현준 간사는 "장애아동에게 존엄성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어려운 속에서 장애아동에게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정부쪽 자료는 법과 정책에 대한 형식적 나열이며 통계자료도 불충분하다. 장애아동 인구파악, 특수교육에 대한 요구파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실태조사가 있어야 분명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특히 외국의 경우 시설이 사라지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늘리는 형편이다. 시설 입소는 장애아동의 선택이 아니라 주변에 떠밀려서 이뤄지며, 6백여개에 달하는 미인가시설의 상태는 불안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심사회의는 다가오는데

민간단체들은 "정부가 99%를 잘하고 있다 할지라도 1%의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면 그들에 대해 집중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인권"이라며,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보다는 하고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해 겸허하게 고민하는 태도를 보여줄 것"을 핵심적으로 요구했다. 한편 유엔아동권리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 민간단체들의 권고와 어긋나는 정책을 펼쳐온 교육인적자원부가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날 교육부 관계자가 참석하지 않아 문제제기에 그쳤다.

마지막 발언을 한 법무부의 민만기 검사는 "아동권리협약은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고 채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며 "소년사법문제도 보호과가 아니면 잘 모른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공부를 많이 했지만 제네바회의 참석 전에 바빠서 얼마나 준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너무 '솔직'한 발언을 해서 민간단체 참석자들의 쓴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간담회에는 보건복지부, 외교통상부 등 6개 부처의 담당자들이 참석했고, 민간단체보고서를 준비했던 13개 민간 단체 중에서는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5개 단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정부 2차 보고서에 대한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심사회의는 2003년 1월 15일 제네바에서 열릴 예정이고, 정부대표단은 10여명 규모로 구성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