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조사업무에서 입증책임 전환, 왜 필요한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주요업무 중 하나는 인권피해자의 권리구제다. 그런데 인권침해 사건의 성격상 (진정인-개인, 피진정인-국가기관) 피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조사업무에서 입증책임의 전환> 문제가 인권위 전원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된바 있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인권피해를 진정한 당사자가 피해사실을 증명하게 돼 있는 것이 일반 소송절차의 원리다. 현재 인권위에서도 입증의 책임은 진정인에게 있다.

이를테면, 교도소에서 눈을 다친 재소자가 교도소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아 실명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한다면, 진정인은 교도소에서 눈을 다쳤다는 사실부터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등 모든 피해사실을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 위원회는 진정인이 제출한 자료와 진술을 바탕으로 조사를 하게 된다. 입증책임이 전환된다면 피진정인 즉 가해기관으로 지목되는 교도소가 ‘재소자에게 시의적절하게 의료조치를 취했는가’하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입증책임의 전환 혹은 완화가 논의되는 배경은 진정인과 피진정인과의 관계, 국가인권위원회의 약한 조사권한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설립 이후 9월말 현재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총 진정건수는 2천7백86건. 이들 진정사건 중 경찰․검찰․교도소 등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은 2천2백62건으로 전체 진정건수의 81%다. 그런데 문제는, 인권침해 사실을 증명해야하는 진정인의 위치가 피진정기관에 비해 정보수집과 사실입증에서 훨씬 열세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입증책임의 전환은 자료와 정보가 집중된 국가기관에게 인권침해를 하지 않았고 적절한 인권보장을 했다는 사실을 자료제출이나 출석을 통해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의 인권을 보장해야하는 국가기관으로서 적절한 조치를 다했는지를 밝히게 하는 것은 기본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이상희 변호사는 “입증책임 전환 혹은 진정인의 입증책임 완화는 입증이 어려운 부분에 한해 고려할 수 있다”며 “수사기관이나 교정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검찰에 고소하는 경우, 기소율이 1~2%로 극히 낮은 것은 입증책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변호사는 “피해사실은 있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인권침해 사건이 많은데, 입증책임이 전환된다면 인권위가 인권침해를 신속히 구제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피해사실 조사에서 인권위는 피진정인에 대해 서면진술․출석 요구 이상을 할 수 없으며, 피진정인이 조사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어서 조사권한이 한계적이다. 이때, 피진정기관이 증거를 없애서 입증하기 어렵거나, 인권침해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에 인권침해 혐의가 있다는 개연성이 인정돼도 인권위는 피해자에게 구제조치를 취할 수 없다. 즉 현행대로라면 다수 진정사건이 기각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입증책임의 전환은 이처럼 인권위의 제한적인 조사권한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입증책임 전환의 예는 국제인권절차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선택의정서 제4조2항은 피해자가 국가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청원하는 경우, 당사국에게 인권침해 사실 여부 및 적절한 구제조치를 했다는 진술서를 인권이사회에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인권위는 많은 진정건에 대해 인권침해 개연성이 있어도 입증이 어려워 구제조치를 할 수 없는 현 상황을 적극 타개하기 위해 입증책임 전환에 대해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별 사건에 대해서도, 국가기관이나 고용주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