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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법원, “피의자 지문날인 강요는 부당”

경범죄처벌법 ‘지문채취불응’ 조항 위헌제청


묵비하는 피의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경찰이 지문날인을 강요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법원의 결정이 뒤늦게 확인됐다. 서울지법 북부지원 단독2부(판사 박범석)는 경범죄처벌법 제1조 42호 '지문채취불응' 조항이 헌법이 보장하는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원칙에 위반된다며 지난달 30일 위헌제청 결정을 내렸다.

현행 경범죄처벌법 제1조 42호에 따르면, 경찰이 지문조사 외에 다른 방법으로 피의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지문을 채취하려고 할 때, 피의자가 이를 거부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을 받는다.

지난 2월 자통협 유영재 사무차장은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의 지문채취 요구에 불응해 즉결심판에서 구류 3일, 유치명령 3일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이후 위헌제청 신청도 했다. 피의자에 대한 지문날인 강요는 △진술거부권 보장(헌법 제12조 2항) △영장주의(헌법 제12조 3항) △적법절차원칙(헌법 제12조 1항 후문) △양심의 자유(헌법 제19조)에 위배된다는 취지였다.

앞서 유 사무차장은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부시방한반대' 집회에 참석했다가 집시법 위반 혐의로 연행됐다. 하지만 연행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 인적사항 등 심문내용에 대해 묵비로 일관했으며, 신원확인을 위한 지문채취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박범석 판사는 "피의자가 지문채취를 거부하는 때 이를 강제한다면 피의자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사실을 또 하나의 피의사실로 만들어…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에 복종할 의무를 부과하는 형벌법규를 설정… 영장주의를 형해화 시킬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수사기관은 주변의 탐문조사에 의해서도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고,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확인하려 한다면 법원의 영장을 발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판사는 또 "수사의 편의성 및 신속성만을 고려해 지문채취에 응하지 않은 피의자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것이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춘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피의자에 대한 지문날인 강요가 진술거부권 보장과 양심의 자유에는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 씨는 "수사의 편의성만 위해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일단 환영했지만, "진술과 양심의 개념을 좁게 해석했다"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