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진영종의 인권이야기

함께 갑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불평등한 관계가 있음을 이해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사회적으로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실현해온 것이 인권의 역사다. 그 중의 하나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주거이전의 자유이다. 주거이전을 제한하고 속박하는 것은 특권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자기의 부와 향락을 위한 도구 내지 부속물로 여긴 결과이다. 특권이 없는 사람이 결코 특권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이 없는 사람도 자신의 개인적인 존재이유와 사회적인 존재이유를 가지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이제는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니, 자명한 사실로 깊이 있게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누구나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척은 하고 있다.

강제로 사람을 이주시키는 것도 속박이요, 특정한 장소에 출입을 금지하는 것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폭발적으로 촉발시킨 것도 흑인은 버스의 특정한 좌석에 앉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 아닌가. 누구나 고급 레스토랑이건 싸구려 포장마차건 출입할 수 있으며, 택시건 트럭이건 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좌석도 제한 없이 이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이해하기 쉽다. 버스 좌석은 비슷비슷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차별을 하면 쉽게 그 차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차별이 아닌 것 같지만 심각한 차별이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누구든 버스나 택시나 전철을 이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러한 대중교통수단의 이용에서 철저하게 배제 당하고 있다. 대중교통이 몸이 성한 사람만 타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 이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알게 모르게 이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은 몸이 성한 사람만을 전제로 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세상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도, 마음이 다친 사람도, 나이가 많은 사람도, 그리고 어린 사람도 있다. 이 모든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인 것이다. 특정한 신체적 조건과 연령층만을 위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통념은 곧 인간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특권층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다른 사람들은 특권층을 위한 도구로 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몸이 불편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인간역사 이래 어떤 사회에서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고 몸이 성한 사람도 함께 있는 법이다. '우리' 속에는 이 모든 사람이 포함돼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성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권리를 똑같이 누려야지, 결코 약자에 대한 배려를 받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 함께 가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