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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권두섭의 인권이야기

'인간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받는다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받는다면 어떨까.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는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모집인 등 특수고용직이라고 불리는 일단의 노동자들이 있다.

1999년 겨울 재능교사 노조 설립투쟁은 비정규직 특히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후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조를 비롯해 이후 레미콘 기사의 건설운송노조, 보험모집인노조, 학습지산업노조 등이 속속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이같은 특수고용 형태는 서비스업의 발달과 정보기술의 발전 그리고 이윤증대를 위한 사용자들의 경영방식 및 노무관리방식의 전환 등으로 급증하고 있다. 노동법은 노동자여야만 적용을 받게 되며 법원은 노동자인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엄격한 사용종속관계를 요구하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사용자와의 사용종속관계 내지 경제적·인적 종속관계 하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나, 사용자들은 이들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두고 자신들이 져야 할 노동법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리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4대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돼 법정수당, 휴일·휴가, 고용보장, 모성보호, 산업재해, 퇴직금, 실업수당 등을 받지 못하고 있고, 노동조합 설립 및 단체교섭, 단체행동권의 행사도 매우 제한을 받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사회적 확산과 함께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자성 역시 사회문제로 등장했고, 노조가 본격적으로 설립되면서 생기는 사용자와의 법적 분쟁의 결과로 '노동자성'에 관한 노동위나 법원의 판단이 상당수 나오게 됐다.

그 과정에서 법원이 엄격한 사용종속성의 기준과 적용에서 벗어나 "근로관계"의 변화나 사용자의 의도를 직시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최근 판결들은 그러한 기대가 오산이었음을 드러내 준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에 대하여 서울행정법원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내용인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조 못 만든다'고 하였으며, 이 판결의 논지를 그대로 인용하여 서울고등법원은 레미콘 기사에 대하여도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최근의 흐름은 과거 판례의 태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더욱 공고하게 노동자성 부정이라는 입장을 확인하고 있다. 그간의 생산적 논란이 매우 부정적인 결과로 귀결됐고 엄격한 사용종속성을 고집하는 판결이 앞으로 오랜 기간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의 경제적 부담에만 신경이 쓰이고 노동자들의 고통은 보지 않는 현재의 법원 구조아래에서는 변경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결국 입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특정사용자의 사업에 편입되거나 상시적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용자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어 생활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라는 방식으로 노동자 개념을 추가하는 입법조치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