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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시민, 경찰 불친절 신고했다 봉변

시경청문감사실, "경찰 위해서도 시민 권리 찾아야"


경찰의 태도가 부당하다고 느껴 경찰서에 민원을 제기했던 한 시민이 그것 때문에 도리어 봉변을 당했다.

서대문구에 사는 김선주 씨는 지난 달 29일 아침 순찰차가 집 앞에 와서 사이렌을 울리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 거의 강제연행되다시피 파출소에 가야 했던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불과 그 몇 시간 전에 김 씨가 서대문경찰서 청문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더구나 김 씨는 이 일로 인해, 깔끔히 해결됐던 문제를 꼬투리 잡혀 '주거침입죄' 혐의로 고발당했다는 것도 며칠 전 새로이 알게 됐다.


청문감사실 민원 제기 화근

김 씨가 말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29일 새벽 김 씨는 술을 마시고 가던 중 소변이 급해 독서실 등이 있는 건물에 들어갔다가 독서실 관계자로부터 도둑으로 오인을 받았다. 사정을 설명했지만 상대방은 김 씨를 믿지 못하고 연희파출소의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상대방이 김 씨의 멱살을 잡고 우격다짐을 하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어, 김 씨가 항의를 하자 김모 경사는 웃기만 하고 그와 함께 온 다른 경찰은 욕을 하며 '술 먹고 남의 건물에 들어가 놓고 왜 말이 많냐'는 둥 김 씨의 말을 묵살했다.

결국 김 씨는 도둑이란 오해를 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경찰의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이에 김 씨는 새벽 5시 40분께 서대문경찰서 청문감사실에 전화 해, 상황을 설명하고 김 경사 등으로부터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청문감사실은 시민이 경찰의 비리, 불친절, 인권침해 등에 대해 신고하면 자체적으로 조사해 문제를 시정하도록 하는 경찰 내부의 정화기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씨는 김 경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네가 어디다 전화냐'는 둥의 내용이었다. 이윽고 아침 8시께, 김 경사 등이 김 씨의 집에 순찰차를 타고 와, '어디다 전화질이냐. 당신이 술 취해서 한 실수라고 해라'라며 파출소로 가자고 종용했다. 김 씨가 가지 않으려 하자, 김 경사 등은 사이렌을 울리고 대문을 차고 마이크로 김 씨의 이름을 불렀다. 동네 사람들한테 창피하고, 가족들 보기 민망해 김 씨는 결국 경찰을 따라나섰다.

김 경사와 함께 온 다른 경찰은 차안에서도 계속 김 씨에게 겁을 줬고, 파출소에 도착하자 수갑을 채우려고도 했다. 김씨가 '내가 현행범이냐'며 항의하자, 경찰은 '독서실 사람을 불러와서 너를 고발하게 하겠다'고 했다.


'술 취해서 한 실수라고 해라'

김 씨는 서대문경찰서로 옮겨진 후, 독서실 사람이 한참 형사랑 얘기하다 가는 걸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낮 12시 반쯤 형사계에서 김 씨에게 '괜히 청문감사실에 신고하면 경찰이 징계 받거나 감봉처분 받으니, 좋게 처리하자'며 '내용은 읽어 볼 거 없이 지장만 찍으라'고 해 김 씨는 지친 나머지 거기에 응했다. 그리고 이후 김 씨의 부인이 김 씨를 대신해 '모두 본인의 경솔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원을 제기한 것을 사과한다'는 요지의 글을 쓴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한동안 김 씨 부부는 의아해하는 동네사람들에게 일일이 해명을 해야만 했고, 김 씨는 "부당하단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며 14일 인권단체에 이러한 사실을 털어놨다.

한편, 이에 대해 15일 김 경사는 "29일 새벽에 사과를 하라고 김 씨가 전화를 했다길래, 불쾌한 생각에 김 씨 가족들 있는데서 이야기하려고 아침에 그 집에 간 거다. 집 앞에서 사이렌을 울리긴 했지만, 김 씨가 같이 가겠다고 해놓고 안 나와서 그랬다"며 잘못한 것이 없다는 듯 말했다. 이어 김 경사는 "독서실 사람에게 전화해 김씨 얘기를 하니까 그 사람도 불쾌해 해 경찰서로 나오라고 했다"고 밝혔다.

15일 서대문경찰서 청문감사실의 박호순 경위는 "형사계에서 김 씨의 '주거침입죄'가 인정돼 검찰에 조서를 넘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형사계에서 당시 내용도 보지 못한 채 지장을 찍은 게 '주거침입죄'에 관한 조서였던 것이다. 김 씨는 이 사실을 15일 본지 기자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박 경위는 "김 씨가 신고한 내용에 대해서는 김 경사의 경위서를 아직 못 받았다"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김 씨는 청문감사실에 경찰의 부당행위에 대해 다시 이의신청을 할 예정이다. 또 김 씨는 "'주거침입죄' 고발건에 대해서도 필요하면 법적 대응을 할 거"라고 밝혔다.

서울시경 청문감사실의 한 관계자는 "경찰이 단지 불친절하게 대한 것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불쾌함을 느낄 수 있고 청문감사실에 신고할 수 있다. 그런데 민원을 제기했다는 사실 때문에 시민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건 단순한 업무상의 불친절을 뛰어넘는 중대한 문제"라며 "경찰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도 시민들이 약자의 위치이긴 하지만 가만히 있지 말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