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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신윤동욱의 인권이야기

낯선 길을 찾아 가보기


첫 번째 길은 당황스러웠다. 올 봄 어느 날. 미얀마에서 온 이주 노동자를 취재하는 길이었다. 지하철은 인천지하철의 종착역 ‘동막’을 향하고 있었다. 동막역은 3D업종이 주를 이루는 중소공장이 밀집한 인천 남동공단과 가까운 역이다. 깜빡 졸다가 눈을 떠보니 주변이 낯설었다. 얼마 남지 않은 승객들 중 피부색이 나와 다른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탓이다. 문득 ‘안심’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동막역에 내렸다. 약속보다 조금 빠른 시간이다. 기다린다. 역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이다. 불안함을 떨치지 못한다. ‘쳇, 나는 이토록 편견을 떨치지 못하는 인간이었군…’. 당황하는 나 자신에 실망한다. 내 몸 안에 녹아든 왜곡된 교육의 효과를 저주한다.

두 번째 길도 낯설긴 했지만, 당황하진 않았다. 11월 어느 주말 저녁. 안산역 앞의 국경 없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한글 간판만큼 한자 간판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영문 간판도 가끔 보인다. 중국동포를 비롯한 이주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걸어도 한국말
은 잘 들리지 않는다. 삼삼오오 짝지어 걸어가는 이주 노동자들과 스친다. 잘 웃고, 잘 떠든다. 어깨도 움츠린 기색이 없다.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이주 노동자들을 가끔 만나면서 내 몸에 새겨진 ‘거부감’을 조금 지운 탓이다. ‘익숙함이란 이토록 무섭군…’.

세 번째 길은 언제나 유쾌하다. 주말 밤, 종로에서 23번 버스에 오른다. 23번 버스 노선은 주말 게이들의 동선과 겹친다. 오후 늦게 종로에서 만나서 밤늦게 이태원으로 향하는 길. 종각, 남영동 버스 정류장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진다. 대개 남영동을 지나면 게이들이 승객의 다수를 점한다. 섹슈얼리티의 다수와 소수가 잠시나마 역전되는 순간이다. 반갑게 인사하는 소리, 목청껏 떠드는 잡담…. 버스 안이 시끌벅적해진다. 옥타브 높은 남자들의 목소리에, 낯선 차림새에 몇몇 승객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쩌다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다. ‘뭔가 불쾌한가 보군…’.

단일 민족, 단일 정체성 사회로 ‘보이는’ 한국 사회에도 이처럼 소수자와 다수자의 위치가 역전되는 해방공간이 있다. 그 길 위에서 소수자들은 마음껏 유쾌하다. 진정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싶다면 안산행 지하철이나 이태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볼 일이다. 거기에 숨쉬고 떠드는 구체적 그들이 있다. 자꾸 다니다 보면 낯선 길도 익숙해지는 법. 마음이 향해 있다면, 멀지 않은 길이다.

(신윤동욱씨는「한겨레 21」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