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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국보법, 청보법 때문에 자기검열'

민예총․문화연대, ‘표현의 자유’ 설문조사


상당수의 예술인들이 작품을 창작할 때 법․제도 등을 의식해 자기검열을 한다고 답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한 238명의 예술인 중 35.5%가 법제도의 영향으로 스스로 자기작품에 대해 검열을 한다고 답했다.

민예총과 문화연대가 지난 달 8월 20일부터 9월 3일까지 8개 분야 47개 항목에 걸쳐 15일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예술인들이 창작할 때 ‘영향을 받거나 고려하는 법령’은 국가보안법(응답자의 63%)이 으뜸을 차지했다. 이는 흔히 생각하듯이 영상물이나 간행물 등에 대해 등급부여와 같은 ‘성’과 ‘폭력’에 의한 규제보다도 국보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1차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청소년보호법(15.1%), 음반비디오및게임물에관한법(7.7%, 음비게법)이 그 다음을 차지했다.


국보법, 표현의 자유의 제1 장애물

설문응답자의 84.9%는 국보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답했으며, 국보법이 ‘이데올로기 통제수단’(39.2%), ‘정권안보 및 정권유지의 도구’(52.2%)라고 지적했다. 이는 ‘성’, ‘폭력’에 의한 것 검열보다 국보법의 존재가 표현의 자유의 테두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는 정치․사회적 검열이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법, 제도적 개선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에서 실시됐다. 설문응답자는 공연예술인(음악, 연극, 춤) 100명, 시각예술인(미술, 사진) 64명, 출판예술인(문학, 만화) 58명, 영상예술인(영화, 애니메이션) 13명 등 모두 238명이다.

문화예술단체 회원에게 우편 및 전자우편 발송, 문화예술 관련 행사장을 직접 방문조사 하는 등 실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18.4%인 44명의 예술가들이 창작과 관련해 입건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 특정종교나 우익단체, 구청, 안기부, 경찰 등 국가기관으로부터 사법처리 위협, 전화도청, 학부모 및 교육청의 압력, 방송 심의규정에 의한 방송금지 조치를 당한 사람이 2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54.1%는 청보법이 청소년 보호를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청소년보호위가 검열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75.7%), 다수의 예술인들은 청보법의 개폐를 원하고 있는 것(84.1%)으로 답했다. 응답자들은 ‘음비게법’의 ‘음란물차단프로그램설치’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95.2%)고 답했다.


음비게법․청소년보호위 등도 표현의 자유 침해

예술인들은 또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전자적 표시의무를 규정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84.7%)고 답했다. 그러나 전기통신사업법의 ‘불온’ 개념이 “인터넷의 표현의 자유를 감시․통제하기 위한 것”(58.8%)이라면서도, ‘불온통신 금지․처벌’ 조항이 있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54.5%에 달했다.

한편 민예총․문화연대는 이번 조사에서 영상예술인 응답자가 13명에 그쳐 영화진흥법 등에 대한 설문결과를 발표하기에는 너무 적은 인원이라고 판단, 9월말까지 영상예술인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추가로 진행하기로 했다. 조사결과는 이후 발표될 ‘표현의 자유 침해 백서’에 포함될 예정이다.

설문조사내용을 기초로 민예총과 문화연대는 2001년 국회 문화관광위에 표현의 자유의 확보를 위한 정책대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정책대안에서 이들은 “예술발전과 이를 통한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국보법 폐지 또는 전면개정이 절실하다”며 “문화부가 ‘문화적 논리’를 가지고 다른 부처를 설득하고, 국보법 폐지를 위한 문광위 특별결의안을 채택”하라고 제시했다.


조사토대로 국회에 정책대안 제시

또 현행 청보법이 “청소년들의 올바른 문화적 수용을 위한 적극적인 매체교육을 담지하고 못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규제법의 기능이 더 강하다”며 청보법의 폐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청소년 스스로 문화컨텐츠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문화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 유해매체 표시의 의무화’에 근거한 인터넷에서의 전자표시 의무화는 “실효성도 없을 뿐더러 청소년들에 대한 올바른 매체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외에도 ‘음비게법’ 제32조의 5호의 ‘음란물차단프로그램 또는 장치’ 설치의 의무화는 “명백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시민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며 폐지를 요구했다.

이번 설문은 국보법, 청보법, 음비게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개인정보보호등에 관한법, 전기통신사업법, 영화진흥법 등 6가지 법령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응답자의 연령은 30대(37.8%)가 가장 많고, 20대(33.2%), 40대, 50대 순이었다. 예술활동기간은 10년 이상(28.6%)이 가장 많고, 5년 이상(27.3%), 5년 이하(24.8%), 20년 이상(18.1%)의 분포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