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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정재숙의 인권이야기

도보권도 인권이다


한 친구와 인천까지 걸어갔다 온 일이 있다. 80년 겨울이었다. 이른 아침, 그와 내가 다녔던 재수학원이 있던 노량진께에서 만나 무턱대고 걸었다. 둘은 어려운 1년을 보내고 막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고 난 참이었다. 이미 대학에 간 친구들이 많았기에 봄․여름에 걸쳐 서울역 관장과 시청 앞으로 달려나갔던 그들에게서 날아온 최루탄 냄새는 그 전염성이 너무 강했음에도, 우리는 감옥같던 학원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소심하고 민감했던 10대 끄트머리에서 '실패자'라는 자의식으로 움츠러들었던 우리가 인천으로 도보여행을 떠난 것은 아마도 그러저런 부끄러움과 회한을 털기 위한 의기투합 때문이었을 것이다.

벌써 20년이 흐른지라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웠던 길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꽤 추웠지만 두툼한 돕바에 목도리를 한 우리는 들판과 거리를 지나 인천으로, 다시 서울로 잰 걸음을 놀리며 아팠던 1980년을 마무리하는 의식을 치렀다. 우리는 어쩌면 병자였고 무조건 걷는 일은 회복기 환자에게 좋았다. 걷는 일은 요즘 말로 치면 '느림'으로 가는 행위였고, 삶은 선택하는 절실함을 한 발 한 발 확인하는 디딤이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인천까지 걸어갔다 오라면 아마 못할 것이다. 마음도 문제겠지만 길이 없다. 차도에 밀려 인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 국토가 사람 다닐 길보다 차 달릴 길 내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올 여름 백두대간을 따라 전 국토를 걸어서 종주한 원공 스님(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은 "큰일 났어. 걸어다닐 길이 없어" 한탄하셨다. 지난 20여년 '걷는 스님'으로 이름이 난 그는 이제 길이 없어 차 없는 사람들은 걸어다닐 수도 없게 됐다고 기가 막혀 하셨다. 하루 일백리를 걸으며 '한민족 동질성 회복 기원' 순례도보기도를 바치던 스님은 빵빵거리며 걷는 이들을 위협하는 차들 때문에 깜짝 놀라기를 여러 번, 찰과상에 교통사고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원공 스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전국에 걸어다닐만한 길이 없다. '길'하면 다 찻길을 뜻한다. 게다가 자연이고 뭐고도 이젠 없다. 옛날에는 산이 있으면 뺑 돌아 길을 내던 것이 막바로 뻥 뚫어버리는 지경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국 근대화가 대한민국에 남긴 것이 사방팔방 길뿐이란 생각도 든다. 시대에 한참 뒤처진 말일지라도 "우리나라에서 한방울도 안나는 기름 사다 쓰며 무슨 차들을 그리 굴리느냐"는 원공 스님 꾸짖음은 맞아 싸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자동차회사와 건설회사 좋은 일 시키자는 도로공사요, 그 재벌들 뒤에 서 그들 손 들어주던 나랏님 때깔나는 길내기다.

고속도로 없었으면 이만큼 밥먹고 살게 됐겠느냐는 큰소리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밑에 깔린 "도보권도 인권"이란 작은 목소리도 소중하다. 차로 씽씽 달리는 길이 보여줄 수 없는 절실한 아름다움과 깨달음이 그 길을 제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이에게 온다. 걷기에 참 좋은 철이다.

- 정재숙 씨는 한겨레 문화부 기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