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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상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남북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다시 화려하게 물위로 떠올랐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남 혁명전략을 수정할 뜻을 내비침으로써 국가보안법 대폭 개정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호주의'는 바야흐로 가장 손쉽고도 설득력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북한이 어차피 대남 혁명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수구 기득권 세력이 국가보안법 개폐 주장을 뭉개기 위하여 애용했던 논리가 바로 상호주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상호주의가 국가보안법의 운명을 결정하는 듯한 이 상황이 불안하다. 상호주의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흥정에 다름이 아니며, 흥정은 때로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일정한 타협점을 찾아 '안정태'에 들어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려되는 상황은 국가보안법 중 북한을 직접 겨냥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겨냥하는 7조, 특히 7조 3항이 흥정 대상에서 빠져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시나리오다.

돌이켜보면 상호주의는 반드시 수구세력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가끔 우리 운동도 과거에 알게 모르게 상호주의에 침투 당해온 것이 아닌가 의심을 가져보곤 한다. 예를 들어 "조국통일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주장 또한 상호주의로 귀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형식논리로는 "'북의 국가보안법'도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는 조잡한 대항논리를 필연적으로 낳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통일운동과 강하게 결부된 국가보안법 폐지론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우리의 어설픈 정치논리가 우익의 조잡한 상호주의 논리를 강화시켜왔고 우리는 그렇게 강화된 상호주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운동의 '업보'이다.

상호주의의 주술에서 해방되는 길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의 중심에 '남-북'의 관점이 아닌 철저한 '인권'의 관점을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보안법이 '북한의 존재' 때문에 유지되어야 한다는 말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애당초부터 언제나 국가보안법의 본질은 '북의 위협'을 빙자한 남한 내 진보세력과 민중에 대한 폭력이었다. 굳이 말한다면 우리는 북한과 화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당하고 있는 이 암담한 인권침해를 분쇄하기 위하여 보안법을 철폐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상호주의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쉽게 눈에 들어오는 지름길을 버려야 한다. 차분한 발걸음으로 모든 이웃에게 '인권'을 전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