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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삼부커뮤닉스 해고노동자들을 만나

"싸움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공장이 보증금 120만원 짜리 건물에 세들어 살던 시절에 입사해 10년이 넘게 일했습니다. 그야말로 창립멤버인 셈이죠. 하지만 입사 때 받은 가운이 다 헤져서 망사가운이라는 농을 들을 정도가 되도록 회사는 가운을 바꿔주지 않았어요."

43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남종순 씨가 그 시절 왜 그렇게 멍청하게 지냈는지 모르겠다며 회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4월 8일 오후 4시. 봉천동 산동네에 위치한 허름한 다세대 주택에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줌마 30여명이 모였다.

10여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비좁게 자리를 잡은 이들은 지난 1월 해고당한 삼부커뮤닉스 해고자들. 회사 앞 집회를 마치고 모인 이들은 그 동안 직장생활은 어땠냐는 물음에 지친 것도 잊은 채 너도나도 하소연을 해댔다. "생리 중에도 화장실 한 번 제대로 못 갔어. 그랬으니 오죽했겠어? 우리 대부분이 오줌소태에 걸리고 심지어 어떤 이는 방광이 부어 수술까지 했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아줌마가 거든다. "그나마 주어지는 휴식시간에도 그냥 놔두질 않고 청소를 시켰어요. 몸이 너무 아파도 잔업조차 못 빠지고 일했지. 안 그러면 사표를 써야하는 분위기였으니까. 일이 하도 고돼 2달간 하혈한 사람도 있고, 일하다 쓰러진 사람도 있어요."

겉으로는 경로잔치도 열고 불우 이웃돕기도 하는 등 번지르르한 회사였지만 생산라인은 영화에서 보던 '70년대 공장'이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하혈에 방광염까지

왜 진작 그만두지 않았냐는 물음에 이들은 "애사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5년간 삼부에서 일했다는 홍은희 씨는 "우리세대가 전후세대로 무척 어려울 때 태어났쟎우. 그래서 우리 나라가 잘 되고 우리 회사가 잘되면 우리도 잘 살게 되는 줄 알고 악착까지 일했어"라고 말한다. 그런 홍 씨였기에 회사측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사표를 강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직노동자로 오라고 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쉽사리 잊혀지지가 않는다.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이게 홍 씨의 당시 심경이었다.

이러한 배신감은 해고자들을 하나로 묶어냈다. 70명의 해고자 중 어느 누구도 회사측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다른 회사의 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하는 것만 봐도 눈쌀을 찌푸렸다는 이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회사 앞에서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고된 투쟁의 길을 선택했다.

해고자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귀자 씨는 말한다. "우리 모두 대안이 없어요. 자식 대학 보내려면 돈은 벌어야하는데, 다른 데는 취직 할려고 해도 이 나이에 취직이 될 리가 만무하고. 이제 보이는 거 없어요. 전원이 복직되는 날까지 어떻게든 싸우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