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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목이 묶인다는데 발이야 잠시 묶여도…


저는 인천에서 지하철을 타며 출퇴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인천이나 부천지역에 사시며 서울로 출퇴근 하시는 분들은 다들 잘 아시겠지만 출근길 지하철 타는 5분 10분이 하루 직장생활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19일 지하철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듣고 서둘러 출근길을 앞당겼습니다. 날씨마저 찌는 요즘에 역시 만원인 지하철 출근길에서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직장에 도착한 후 역시 화제는 지하철 파업이었습니다. 다들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는 동료들이라 대부분 파업에 따른 파행운행에 곱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지하철 노조를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여성 동료가 "지하철 파업 당연한 것 같은데요"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평소에 사회문제나 정치문제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였던 동료라서 모두들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 입에서는 지하철 3천명의 노동자의 정리해고,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노동시간 단축, 지하철 개혁에 대한 설명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습니다.
다른 한 직원이 농담 삼아 "혹시 가족 중에 지하철 노조원이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맞아요, 우리 외삼촌이 지하철 노조원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지난 가족모임 때 외삼촌과의 대화를 우리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녀는 평소 성실한 태도로 살아가는 외삼촌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면서 그날 외삼촌이 파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까 그녀의 이야기가 생각나 평소에 무심코 흘겨보았던 지하철 역사와 열차에 붙어 있는 지하철노조의 유인물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자세히 읽어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더군요. IMF 이후 실업자가 400만이라는 현실에서 아무리 보아도 노동시간 단축만이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책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의 75%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실업문제 해결에 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해 우리 회사도 구조조정이다 뭐다 하면서 30% 가까운 직장동료들을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그 때의 살벌한 풍경은 지금 생각해도 오싹할 정도로 정말 이곳이 직장인지 지옥인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결국 지하철노조의 파업에 심정적으로나마 지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당장 내 몸이 불편하다보니 지하철노조의 파업을 100%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지하철노조의 파업에 적어도 일방적인 비난을 퍼붓지만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며칠 발이 묶여도 목이 묶이지 않으려면…

인천 주안동에서

# 이글은 파업중인 공공연맹이 통신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