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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공룡트림] 여전히 노동조합은 좋은 소식, 중립은 없어!

노동자를 이야기하는 그림책, 『당신은 어느 편이죠?』

'노동자는 [ ]다'의 빈칸을 채운다면 어떤 말이 들어갈까?
고등학교 노동인권 교육시간에 던진 같은 질문엔 다소 충격적인 대답이 등장하기도 했다. '덜 배운 자', ‘거지', '외국인', '지저분한' 등등. 또 어느 중학교 노동인권 교육시간에는 '노동자'라는 단어 자체에 뜨악 놀라기도 했다. 자신이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혹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만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을 빼고도 전체인구의 50% 이상이 노동자인데도 말이다. 앞으로 노동자가 될 사람들에게도 ‘노동자’는 낯설었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 ‘직장인’만 있고 노동자가 낯선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를 왜곡하는 공범들

중학생들은 노동자들을 '덜 배운 자', '외국인', '거지', '장애인' 등으로 표현했다. (출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트위터)

▲ 중학생들은 노동자들을 '덜 배운 자', '외국인', '거지', '장애인' 등으로 표현했다. (출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트위터)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수업시간에 모의 노사협상을 하는 나라가 있다. 이런 경험은 노동자가 되는 것도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학교 수업에서도, 뉴스에서도. 어디에서도 노동자를 말하지 않는 사회도 있다. 노동자를 왜곡하는 공범은 의외로 많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때는 아마도 파업의 순간일 것이다. 정부와 언론의 쌍두마차가 불러온 파업의 부정적 이미지는 노동자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진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파업을 한 건데, 정작 파업 속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목소리는 일상에서뿐 아니라 그림책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다. 노동자, 노동조합, 파업과 같이 그림책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당신은 어느 편이죠?』(조지 엘라 라이온 글, 크리스토퍼 카디낼 그림, 김하경 옮김, 고인돌)를 소개하려고 한다.

오세요. 가난한 노동자들이여
여러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게요.
얼마나 멋진 노조가
우리와 함께하는지를.

당신은 어느 편이죠?
...

할란 카운티에는 중립이란 것 없대요.
노조편이냐 아니면 자본가 편이냐,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대요.
...
자본가들은 우리를 보호하고
아이를 교육시킨대요.
그렇지만 자본자들의 아이들은 풍요롭게 살고
우리네 애들은 거의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요.
...
-플로렌스 리스-


유효한 이야기

이 그림책은 1930년대 미국 켄터키주 탄광마을에 살던 일곱 아이의 엄마 플로렌스 리스가 만든 노랫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노조를 만들어 탄광회사에 대항해 싸우던 아빠 샘 리스는 회사의 탄압을 피해 산속으로 숨고, 회사 측에서는 샘 리스의 집에 총잡이를 보냈다. 엄마와 일곱 아이들은 총알이 날아드는 집의 침대 밑에서 밤을 새며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당신은 어느 편이죠?』는 8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를 배경으로 하고 총잡이가 위협하는 까마득히 오래전 상황이 그려진 그림책이지만, 불행히도 노동자의 현실은 2015년 현재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80년 넘게 이 노래가 계속해서 노동자들에게 불리는 이유도 바로 변하지 않는 노동자의 현실이라고 책은 이야기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는 상황은 세월만큼 변하지 않았다. 철탑 위에서, 크레인 위에서, 또는 천막도 없는 농성장에서 그리고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실험실에서... 여전히 노동자이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사림들이 있지만 노래가 되어야 할 그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들리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특별하다.

제목부터 ‘어느 편이냐’고 묻는 이 그림책은 매우 직설적이다. 노조 편이 아니면 자본가 편, 이렇게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단정적인 노랫말이 불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그림책이 이렇게 이분법적이어도 될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회색, 모호한 입장이 세월을 거슬러 이 그림책의 노랫말이 여전히 유효한 현재를 만들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립이라고 선택한 무엇이 구조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늘 어느 한쪽을 편들어 온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우리가 선택했던 것이 사실은 중립이 아니라 현재를 유지하는 부정의가 아니냐는 질문을 이 책은 던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노동조합이 왜 노동자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지 생각해볼 기회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이 없는 일터라고 하면 '월급을 많이 주니까', '직원한테 잘해주니까', '문제가 없는 회사니까' 이런 생각이 유통되어왔다. 노동조합 활동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고, 노동조합을 좀처럼 이해 불가한 반사회적(?)인 것처럼 여기고,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걸 들어왔으니까. 교육의 과정에서건, 아르바이트에서건, 뉴스에서건, 노동자의 집단적 주장과 행동을 자연스러운 체험으로 만나본 적이 없다. 체험은 한 번의 경험을 넘어 문화와 가치로 이어진다.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좋은 소식이라는 경험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하다.
『당신은 어느 편이죠?』는 지금은 잘 들을 수 없는 탄광마을의 이야기이고, 총잡이가 등장하는 외국의 옛이야기이다. 낯설 수 있지만 그것은 오래되고 외국의 경우라서가 아니라 이야기되지 않았던 사람들, 노동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당신은 어느 편이죠?』는 노동자, 노동조합, 파업처럼 오늘을 얘기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덧붙임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