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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김대중 1년, 그늘진 인권현장의 사람들 ⑥ 강승회(전 조폐공사 노조위원장)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던 지난 1년, 구조조정의 강도만큼 처절한 노동자들의 저항도 곳곳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 와중에 99년 1월 7일 조폐공사 옥천창에서는 한 노동자의 분신사건이 발생한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저항을 전개한 것으로 꼽히는 조폐공사의 노동자들은 1월 6일 옥천창으로 모여들었다. 조폐공사 구조조정의 핵심 사안이었던 옥천창 폐쇄 방침에 따라 이날 중으로 옥천창의 기계들이 반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노동자들은 ‘최후의 항전’을 결의하고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채 옥천창 사수에 나섰다.

그리고 1월 7일 오전, 전경 5백여 명은 예고방송도 없이 지게차와 함께 들이닥쳤고, 바리케이드로 설치된 차량과 노동자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위원장 강승회(41) 씨는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기계 반출을 막지 못하면 조합원들의 생존권도 더 이상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경들이 밀려들자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불사하고 분신을 기도했던 강 씨는 다행히 하반신에만 화상을 입었고, 두 달 가까운 입원생활 끝에 지난 2월 19일 현장으로 돌아왔다.


왜 일방적인 구조조정인가?

“공공부문의 군살을 빼자는 것엔 모두가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조조정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기획예산위원회는 공기업마다 기본적으로 20%의 인력을 감축하도록 했다. 여기엔 합리적 기준이나 분석도 없고, 오로지 기획예산위의 지침에 따른 ‘모양새 갖추기’만 있다고 강 씨는 비판한다.

이에 따라 조폐공사에서는 2천2백여 명의 노동자 가운데 1천여 명이 눈물을 머금고 회사를 떠났다. 단 6개월 만에 무려 40%의 인력이 감축된 것이다. 또 옥천창 폐쇄조치에 대해서도 강 씨는 “옥천창을 경산창으로 통합함에 따라 예상되는 5백억 원의 손실액은 결국 국민과 노동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것이 조폐공사 노동자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투쟁의 결과는 냉혹했다. 10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고 그 가운데 3명은 구속, 3명은 수배를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회사측은 민사소송을 통해 조합비와 조합간부 9명의 개인재산을 가압류했다. 그리고 1월 7일 투쟁을 고비로 1차 구조조정은 일단락됐다.


상처를 딛고 다시 처음부터

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강승회 씨도 해고자 신분이 되었고, 집마저 가압류 당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 씨를 착잡하게 만드는 것은 무력화된 노동조합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간부들의 구속수배, 조합비 가압류, 그리고 고용불안을 무기로 한 회사측의 개별적 회유와 협박 때문에 노조활동이 거의 정지된 상태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강승회 씨. 그는 다시 두 팔을 걷어 부쳤다. 노조 복원을 위한 기초공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구조조정의 강풍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