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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 여기는 전투지대 - 평화의 교실을 꿈꾸며

표현의 자유가 질식된 교실에는 교권도, 학생의 인권도 없다

교권추락을 비통해하는 곡소리
무조건 체벌을 금지하니 교사가 동네북이 되었다. 반격해라, 피융피융!
내 아이를 때리다니 교사도 맞아봐라, 따다당!
때리는 선생님이 싫다구? 바꿔 달라구? 감히 애들이 교사를 쫓아내, 세상에! 으드드드!

요즘 학교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전투지대에서 들려올 법한 콩볶는 총소리와 비슷하다. 체벌과 꾸지람을 이유로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했다, 학생으로부터 체벌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업중인 교사를 연행했다는 충격과 격앙된 반응 속에서 교권 추락을 비통해하는 곡소리가 높다. 이 곡소리는 교권수호라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강력한 무기구비를 요구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정작 진지한 '대화'는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전투지대'를 떠나 '가르치고 서로에게 배우는 교실'로 문제를 옮기는 일이 아닐까?


정작 필요한 질문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부모, 학교당국자와 교사,… 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이다. 각각의 관계에 속해있는 당사자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언제나 존재하기에 우리는 이들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항상 던져야 한다.

'두 당사자간의 갈등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갈등하는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권리는 무엇인가? 그 주장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가?', '그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교권추락과 관련하여 최근 언론의 기사와 기고된 글들에 이 질문을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의견이 지배적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촌지수수와 교사정년파동 등을 계기로 교사들의 위상이 약화된 현실과 과거에는 웬만한 체벌이면 수용하던 자세를 보이던 학생과 학부모가 맞대응을 시작했다는 데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은 '사랑의 매(체벌)'가 교육현장에서 일방적으로 금지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교사들이 더 이상 교육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스승을 공경하고 따르는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질문이고 분석일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학습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배움은 '참여'가 존중되고 장려되는 환경에서라야 그 효과가 가장 높다. 교사와 학생의 견해는 표현의 자유가 공정하고도 정의롭게 보장되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표현되고 토론되어야 한다. 학교는 학부모와 여타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장려해야만 한다"(유럽의회, '학교에서의 인권교육에 대한 권고안' 중에서)

표현의 자유가 질식된 우리의 교실에는 분명 교권도 학생의 인권도 없다. 교사가 전교조 반대서명을 강요당하고, 교장이 학교의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학교운영위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학부모에게 뿌려대는 학교는 때리고 차별하는 담임을 바꿔달라는 건의서를 교장선생님께 제출한 초등학생들을 노여운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다.

'그렇게까지 할게 뭐가 있느냐?'는 학생에 대한 힐난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대화'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기술'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학생을 '참여'시켜야 하는 것이 필수답안이다.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학교의 주체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으며 때론 자신을 변호하고 구제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 그런 통로는 자물쇠가 잠겨있는 건의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중전화처럼 흔하고 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경우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은 현실적 약자여야 한다. 최근 불거진 몇 건의 사건으로 교사가 약자로 탈바꿈할 수 없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교권의 주장이 이제 갓 시작된 학생의 인권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지 않았으면 한다. 상식적이고 긍정적인 통로가 없기 때문에 교권 또한 위협받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전환되었으면 한다.

솔직하게 자문해보자. 학생들이 평화적으로 의사를 개진하고 수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교육 현장에서 제시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너희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말고 이 방법을 택해 보아라'하고 말할 수 있는 사례가 있는지 말이다. 어떤 교사나 학생에 대한 여론재판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사와 학교당국만이 싸안고 고민할 문제만은 아니다. 말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의견을 듣자. 그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어떤 식으로 평가받았으면 좋을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스승의 그림자를 밟혔다는 탄식과 분노에서 벗어나 사태를 제대로 인식했으면 한다. 교사를 112에 신고했다는 고교생만이 사제간의 신뢰를 무너뜨린 죄인인가? 이틈을 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체벌이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매가 없다'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황스럽다. 진정한 교권이란 교사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기보다 아이들을 보다 잘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는 한 학부모의 말을 상기하고 싶다.

류은숙(인권운동사랑방 인권교육실장)